경기 성남시에서 지난 5일 발생한 교제 폭력 살인 사건에서 경찰의 위험도 평가 체계상 명백한 괴리가 드러났다. 피해자는 최고 위험 등급인 'A등급'으로 상향됐으나, 가해자는 '고위험'으로 분류되지 않아 구속영장 신청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이다.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가해자 A씨는 약 4년간 사귀던 60대 여성 B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지난달 8일 경찰에 '전 남자친구가 못살게 군다'고 신고했고, 경찰은 물리력 행사 증거 부족과 피해자 의사를 근거로 경고장만 발부했다. 다음날 학대예방경찰관(APO)의 모니터링 과정에서 B씨로부터 A씨의 전화·문자 피해를 청취한 경찰은 고소를 설득했다. 결국 지난달 10일 B씨가 A씨를 고소했고, 이후 고소 이틀 사이 A씨가 15차례 부재중 전화와 8차례 항의성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B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긴급 응급조치 1~2호를 부여했으며, 법원으로부터 잠정조치 결정을 받았다. B씨의 피해자 등급은 'B등급'에서 최고 위험 등급인 'A등급'으로 상향됐다. A등급은 최근 3년간 신고 2회 이상, 1년간 신고 3회 이상 또는 긴급·잠정조치 결정 사건의 피해자에게 부여되는 등급이다.

반면 A씨는 경찰의 관계성 범죄 피의자 위험도 3단계 분류 체계상 '고위험'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경찰이 제시한 9가지 고위험 판단 항목 중 '결별 이후'라는 1개 항목만 해당했기 때문이다. 2009년 폭력 전과가 있지만 그 이후 다른 전과가 없다는 점도 영장 신청을 미루는 근거가 됐다. 경찰은 고소 후 3주간 5차례 B씨와 연락하며 '연락이 없다'는 말에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사건 발생은 경찰의 판단과 현실의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경찰이 위험성을 낮다고 본 지 불과 한 달 뒤 A씨는 B씨를 찾아가 극단적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현재 A씨의 휴대전화 압수와 CCTV 분석을 통해 계획범죄 여부를 포함한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한편 검찰은 사건 5일 전인 지난달 30일 A씨를 스토킹 관련 혐의로 약식기소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경찰은 이 벌금형이 범행 동기가 됐을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위험' 판정 기준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기계적 판단을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