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엠(GM)의 시보레(Chevrolet) 실버라도 EV는 전기차 픽업트럭으로서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춘 차량이다. 400마일 이상의 주행거리, 카 같은 승차감, 광활한 적재함, 구글(Google) 파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손을 놓고 조종할 수 있는 슈퍼크루즈(Super Cruise) 자율주행 기술까지 탑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은 부진하고 있다. 지엠은 지난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약 1만 4천 대만 팔았고, 가솔린 실버라도의 분기별 판매량이 이의 10배에 달한다.
가격이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풀사이즈 픽업트럭 구매자들은 평균 6만 6천 달러를 지출하는데, 실버라도 EV LT 익스텐디드 레인지 모델은 정찰가 기준 6만 1천 달러로 5천 달러 낮다. 410마일 주행거리를 제공하는 이 모델은 가솔린 트럭 구매자들의 평균 지출 범위 내에 있다. 전문 조사기관 스트래터직 비전(Strategic Vision)에 따르면 풀사이즈 트럭 소유자의 약 75%는 연간 최대 1회 정도만 견인 작업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견인거리 감소(60% 단축)도 치명적 약점이 되지 못한다. 논리상 40만 대 규모의 가솔린 실버라도 구매층이 전기차로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실제 시승 결과도 긍정적이다. 길이 20피트에 가까운 거대한 차체임에도 후륜조향 기술 덕분에 콤팩트 해치백처럼 주차장을 누비고 다닌다. 적재함은 광활하고 뒷좌석에는 다리를 뻗을 여유가 있으며, 캐빈 소음도 최소화되어 있다. 205킬로와트시 배터리팩으로 인한 탁월한 안정성과 함께 킬로와트시당 2.1마일의 효율성은 같은 크기의 가솔린 차량 수준이다. 슈퍼크루즈 자율주행은 이 규모의 트럭에서 거의 필수적일 정도로 우수하며, 물리 버튼과 노브를 갖춘 제어 인터페이스는 기술 친화적이면서도 사용 편의성을 놓치지 않았다.
스타일링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실버라도 EV는 과거 쉐보레 아발란쉐(Chevrolet Avalanche) 트럭을 연상시키는 외형이다. 4개의 도어와 캐빈으로 연장 가능한 짧은 적재함,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돛' 형태의 미적 장식을 가지고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구글 맵스처럼 여러 경로를 제시하면서도, 슈퍼크루즈 사용 가능 시간을 추가로 표시하는 차별화된 네비게이션 경험을 제공한다.
소비자 외면의 진정한 원인은 사양이나 가격보다 심리적, 시장 전략의 오판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지엠을 포함한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픽업트럭 시장의 구매 심리를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제품이 반드시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자동차 업계의 오래된 명제가 다시 확인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