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싱글 하나로 영국 오피셜 피지컬 싱글 차트 2위. 멤버 다섯 명 모두 영국인이고, 노래하는 방식은 K팝이다. SM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북미통합법인이 영국 문앤백(MOON&BACK)과 합작해 탄생시킨 보이그룹 디어앨리스(dearALICE)가 2025년 2월 데뷔와 동시에 본토 차트에 안착했다. 한국인 한 명 없이 K팝 문법으로 영국 시장을 두드린 결과였다.

현지화 전략, 차트·시상식서 존재감

하이브가 라틴아메리카를 겨냥해 만든 5인조 보이그룹 산토스 브라보스(SANTOS BRAVOS)도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전원 현지인으로 구성된 이 팀은 2026년 6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라틴 음악 시상식 '프레미오스 투 무시카 우르바노 믹스 2026'에서 팬 투표로 결정되는 '베스트 그룹/듀오' 상을 받았다. 같은 해 4월 한국 음악방송 출연을 포함한 국내 활동 직후 3주 만에 주요 SNS 팔로워가 약 61만 명, 23% 불었고, 글로벌 스트리밍 재생 수는 전월 대비 93.5% 증가한 3,280만 회를 기록했다. 한국 시장을 경유하는 것이 현지 팬덤 확장에도 유효하다는 데이터를 남긴 셈이다.

일본에서는 JYP엔터테인먼트와 소니뮤직이 합작한 전원 일본인 걸그룹 니쥬(NiziU)가 현지화 모델의 가장 긴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2023년 단독 투어와 데뷔 첫 스타디움 공연으로 18만 5,000여 명을 동원했다. K팝 방식의 트레이닝과 프로듀싱을 일본 현지 수용자에게 맞춘 전략이 수년에 걸쳐 팬층으로 굳어진 사례로 꼽힌다.

리브랜딩·정체성 논란도 공존

성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JYP가 미국 리퍼블릭 레코드와 합작한 걸그룹 비춰(VCHA)는 멤버 케일리의 탈퇴와 케이지의 전속계약 해지 소송을 거친 끝에 2025년 8월 4인조 걸셋(GIRLSET)으로 팀명을 바꾸고 재출발을 선언했다. 현지 멤버 중심 구성이 계약·운영 면에서 국내와 다른 변수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디알뮤직 소속 블랙스완(BLACKSWAN)은 또 다른 층위의 물음을 던진다. 벨기에·미국·브라질·인도 출신 멤버들이 한국어로 노래하고 한국식 시스템 안에서 활동한다. 한국인 없이도 K팝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 팀을 둘러싸고 업계 안팎에서 계속 오간다.

언어·문화 아닌 '시스템'이 K팝의 본질?

현지화 그룹들의 성과는 K팝이 한국어나 한국인이라는 조건보다 트레이닝 방식, 안무 완성도, 팬덤 운영 구조 등 프로덕션 시스템에 더 깊이 묶여 있음을 시사한다. 대형 기획사들이 현지 파트너와의 합작을 통해 각 시장에 맞는 멤버를 세우면서도 K팝의 제작 문법을 유지하는 이유다. 다만 이 모델이 안정적인 팬덤과 장기 수익으로 이어지는지는 각 그룹이 앞으로 몇 년의 성적표를 더 쌓아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