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95억 원. 우주항공청이 2026년도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예산이다. 전년 대비 4.5% 늘어난 수치로, 53개 세부사업을 아우른다.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다. 그러나 같은 해 NASA의 예산이 약 25조 원을 웃돌고, 중국 국가항천국(CNSA)이 공식·비공식 예산을 합쳐 이에 필적하는 규모를 쏟아붓는다는 사실을 나란히 놓으면, 한국의 우주 예산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가 드러난다.

우주항공청은 2024년 5월 경남 사천에 공식 출범했다. 기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방부 등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던 우주 관련 기능을 단일 기관으로 통합한 것이다. 정부가 '한국형 NASA'라는 표현을 직접 쓸 만큼, 설립 자체는 상징성이 크다. 문제는 기관을 만든 것과 기관이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점이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밀어야 한다

NASA가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전환점은 2000년대 후반 상업우주 프로그램(Commercial Crew Program)을 도입하면서부터다. 스페이스X와 보잉에 발사 운송을 맡기고, 정부는 기술 기준과 인증을 담당하는 구조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NASA는 비용을 줄이고, 민간은 기술을 축적했다. 스페이스X의 팰컨9 발사 단가는 NASA가 직접 운용하던 시절의 우주왕복선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내려갔다.

우주항공청도 이 모델을 명시적으로 참조하고 있다. 2026년 R&D 예산 역시 '민간 주도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을 핵심 방향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정부가 발주하고 대형 공공기관이 수주하는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민간이 기술을 주도하려면 초기 시장 형성 단계에서 정부가 '안정적 수요자'로 나서야 하는데, 계약 구조와 인증 체계가 그에 맞게 정비됐는지는 아직 검증이 필요한 상태다.

기술 주권과 국제 협력 사이의 줄타기

한국은 2023년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으로 독자 발사체 기술을 확보했다. 여기에 더해 달 탐사선 다누리가 현재도 임무를 수행 중이다. 기술적 기반이 전무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차세대 발사체(KSLV-Ⅲ) 개발과 달 착륙선 사업은 수조 원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다. 현재의 연간 예산 규모로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

이 간극을 메우는 방법 중 하나가 국제 협력이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아르테미스 협정에 서명국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NASA와의 공동 임무 논의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협력에는 기술 이전 제한이라는 벽이 따른다. 핵심 추진 기술이나 위성 탑재체 일부는 미국의 수출통제(ITAR) 대상이어서, 공동 개발이라 해도 한국이 독립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로 전환되기까지는 별도의 협상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술 주권을 지키면서 협력의 실익을 챙기는 것, 이 두 목표는 방향이 같지 않다.

인력과 생태계, 예산보다 긴 시간이 걸린다

예산은 1년 단위로 늘릴 수 있다. 인력은 그렇지 않다. 위성 시스템 엔지니어, 추진제 전문가, 우주법·정책 전문가처럼 실전 경험이 쌓여야 역량이 생기는 분야는 대학 커리큘럼을 바꾼다고 해서 단기간에 공급이 늘지 않는다. 우주항공청이 우수 인력을 유치하려면 처우 경쟁력과 함께 '이 기관에서 일하면 세계적인 수준의 임무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과 중소 우주기업이 실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정부 조달 시장에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문이 얼마나 열려 있는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구조인지가 장기적으로 산업의 두께를 결정한다. 미국의 민간 우주산업이 두터운 것은 수십 년에 걸친 국방부·NASA의 중소업체 계약 관행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우주항공청의 출범은 출발선이다. 9,495억 원의 예산이 어디로 흘러가느냐, 그 돈이 대형 공공기관의 간접비로 희석되느냐 아니면 기술을 가진 민간의 역량을 실제로 키우느냐에 따라, 10년 뒤 한국의 우주산업 지형은 완전히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