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15년째 정밀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 모(54) 대표의 하루는 은행 금융 앱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제품 개발을 위해 무리하게 일으킨 대출이 고금리 장기화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매출은 예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 비용이 두 배 가까이 늘면서 이제는 원금 상환은커녕 이자 내기조차 버거운 실정"이라며 "주변 동종 업계 사장들 중에는 이미 야반도주를 고민하거나 폐업 절차를 밟는 이들이 수두룩하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고금리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으면서 대한민국 실물 경제의 모퉁이를 지탱해 온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당초 시장이 기대했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일시적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던 기업들이 구조적 파산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자금줄이 막힌 한계기업의 증가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도산을 넘어 국가 경제 전반의 고용 불안과 금융 시스템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벌어서 이자도 못 낸다'…통계가 증명하는 한계기업의 경고음

실제 지표가 가리키는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한국은행이 2026년 6월 10일 발표한 '2025년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 영리법인 3만 4,456개사 중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의 비중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이라는 것은 기업이 한 해 동안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실상 독자적인 생존이 불가능한 '한계기업'을 의미한다.

고금리 기조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내수 침체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삼중고가 겹친 결과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기초체력이 약하고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의 타격이 집중됐다. 금융권 대출 금리가 연 5~6%대를 상회하면서 중소기업들의 이자 부담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저금리 시대에 저리로 자금을 조달해 연명하던 기업들이 금리 급등기라는 직격탄을 맞으면서 한꺼번에 한계 상황에 봉착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융 지원의 사각지대와 소상공인의 한숨

더 큰 문제는 정부와 금융권이 마련한 각종 지원책이 정작 가장 취약한 곳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금융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조치를 시행하고는 있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신용등급이 이미 하락했거나 담보 여력이 없는 영세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이러한 정책금융 지원 대상에서조차 배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중은행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이들은 제2금융권이나 사채시장 등 고금리 사금융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바닷물을 마시는 격으로, 결국 더 빠른 파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금융 지원 체계는 담보 위주의 보수적인 심사 기준을 유지하고 있어, 정작 생존 가능성이 있지만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유망 중소기업들이 구제받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착륙을 위한 정교한 구조조정과 선별적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고금리 장기화 국면에서 경제 전반의 경착륙을 막기 위해서는 정교한 '투트랙' 대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모든 연명 기업에 자금을 쏟아붓는 방식은 금융권의 동반 부실을 초래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는 선별적으로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해 일시적 위기를 넘기도록 돕고, 자생력을 상실한 한계기업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서민 경제의 모태가 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위해서는 단순 융자 중심의 지원에서 탈피해, 채무 조정 제도를 활성화하고 전업 및 재기 지원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는 등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고금리 장기화라는 거대한 경제적 해일 앞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선제적이고 입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소기업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