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8월, 전국 대형마트 채소 코너에서 시금치 한 봉지 가격이 평년보다 40% 가까이 치솟았다. 배추는 한 포기에 1만 원을 넘겼고, 상추·깻잎 같은 엽채류는 아예 물량 자체가 줄었다. 냉해와 폭우가 번갈아 강타하는 봄·가을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기후가 달라질 때마다 밥상 물가가 요동치는 이른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 이제 계절의 예외가 아닌 구조적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상기후가 농산물 공급망을 어떻게 흔드나
기후플레이션은 단순히 더운 여름 탓에 채소 값이 오르는 문제가 아니다. 생산·저장·수송·판매로 이어지는 농산물 공급망 전체가 기온과 강수량의 변동성에 동시에 노출돼 있다는 데 핵심이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상승할 때 배추·무·시금치 등 노지 엽채류의 단위 면적당 수확량은 평균 5~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확량이 줄면 도매가격이 오르고, 이 충격이 소비자 가격에 전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2주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진폭이 점점 커진다는 점이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1990년대 대비 약 1.4도 상승했으며 집중호우 빈도 역시 뚜렷한 증가세를 보인다. 과거에는 3~4년 주기로 찾아오던 이상기후 피해가, 이제는 매년 반복되는 패턴으로 굳어지고 있다. 농민 입장에서는 파종 시기와 품종 선택 자체가 도박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스마트팜, 기후 변수를 통제 가능한 숫자로 바꾼다
이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대응으로 꼽히는 것이 스마트팜 확산이다. 스마트팜은 온도·습도·일조량·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센서와 인공지능으로 제어해, 외부 기후 조건과 무관하게 안정적인 생산량을 확보하는 시설 농업 방식이다. 정부는 스마트팜 보급률을 2030년까지 50%로 끌어올리고, 스마트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를 같은 시점까지 300개소로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수치만 보면 야심 찬 목표다. 그러나 현장 도입률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초기 설치 비용이 1000㎡(약 300평) 기준으로 수억 원에 달하고, 시스템 운용 인력과 디지털 역량을 갖춘 농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채소 수급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스마트팜 계약 재배 물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자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는 것도, 역설적으로 소규모 농가가 구조 변화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유통 구조 혁신 없이 스마트팜만으론 부족하다
생산 단계만 안정화한다고 기후플레이션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한국 농산물 유통 구조는 산지→도매시장→중도매인→소매의 다단계 경로를 거치면서 유통 마진이 소비자 가격의 30~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구조에서는 산지 가격이 오르면 각 단계의 마진이 퍼센트 기준으로 동시에 불어나, 소비자가 체감하는 충격이 생산자 손실보다 훨씬 크게 증폭된다.
스마트 APC 확충 계획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PC는 산지에서 세척·선별·포장·저온 저장을 한 번에 처리해 도매시장 단계를 줄이고, 대형 유통사·온라인 플랫폼과 직거래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일부 지역 농협이 운영하는 스마트 APC에서는 유통 단계 축소로 소비자 가격을 기존 대비 15~20% 낮추면서도 농가 수취 가격은 유지하거나 높이는 사례가 보고된다. 구조를 바꾸면 기후 충격의 파급 폭 자체를 좁힐 수 있다는 증거다.
결국 기후플레이션 대응은 두 개의 축이 동시에 움직여야 효과를 낸다. 스마트팜으로 공급 변동성을 줄이고, 유통 다단계를 압축해 가격 충격의 전달 경로를 단축하는 것. 기술 투자가 농가 소득 양극화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소농 지원 체계와 공동 스마트팜 모델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가 식탁을 흔드는 속도는 빨라지고 있는데, 우리의 공급망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