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안쪽에 땀이 맺히는 한여름 오후, 스마트폰 화면이 깜빡인다. '배달 수락률이 낮으면 우선 배정에서 제외됩니다.' 문자 한 줄이 한 사람의 브레이크를 빼앗는다. 신호가 채 바뀌기 전에 핸들이 돌아간다. 법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그를 움직인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5년 2분기까지 배달 라이더 관련 산업재해—유족급여를 포함한—신청 건수는 꾸준히 누적되어 왔다. 숫자는 해마다 새 이름을 얹는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의 공지란에는 그 이름들이 올라오지 않는다. '파트너'라고 불리지만, 다쳤을 때 회사가 부담하는 몫은 없다. 파트너십이란 이익은 나누되 위험은 혼자 지는 계약이었던 셈이다.
반론을 먼저 인정하자. 플랫폼 기업들은 라이더에게 자유로운 노동 시간과 수입 선택권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고정된 출퇴근 없이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유연성은 분명 실재하는 가치다. 그러나 유연성이 보호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자유롭게 일할 권리와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서로를 잡아먹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안전망이 없는 유연성은 절벽 위의 자유에 불과하다.
문제의 핵심은 속도 설계에 있다. 플랫폼이 제시하는 '예상 도착 시간'은 교통 법규를 준수하면 맞추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라이더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시간 안에 배달을 완료해야 높은 평점과 다음 콜 우선권이 주어지는 구조에서, 라이더는 매 순간 법규와 생계 사이에서 계산을 강요당한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설계한 위험이다. 고대 로마의 전차 경주에서 목숨을 건 드라이버들이 환호를 받았듯, 지금 우리는 화면 너머에서 그 속도를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제도의 공백도 선명하다. 현행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된 라이더들은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보험료 부담 구조와 신청 절차의 복잡함이 실질적 접근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유럽 여러 나라들이 플랫폼 노동자를 피고용인에 준해 보호하는 방향으로 법제를 정비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의 제도 속도는 배달 오토바이보다 훨씬 느리다.
기업의 자율 규제만을 기다리기엔 이미 너무 많은 계절이 지났다. 배달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설정하는 배달 시간 기준에 최소 안전 기준을 반영하도록 의무화하는 것, 산재 보험료의 사용자 부담 비율을 현실화하는 것, 라이더가 사고 후 소득 공백 없이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 보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세 가지는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지금 당장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할 의제다.
우리가 문 앞에서 받아드는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은, 누군가의 차가운 위험 위에서 건너온다. 그 사실을 외면한 채 편리함을 누리는 것을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속도의 값은 소비자가 치르는 배달비가 아니라, 라이더가 감수하는 위험이어선 안 된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릴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설계해야 할 플랫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