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판 냄새가 배어든 작업복 차림의 노인이 40년째 같은 자리에서 선반을 돌리고 있었다. 그 옆 골목엔 공구상이 있고, 그 맞은편엔 '오늘도 적자'라는 농담을 메뉴판 귀퉁이에 흘려 쓴 식당이 있었다. 을지로는 그런 곳이었다. 도면과 현장 사이, 설계와 제작 사이의 거리가 걸어서 5분이었던 도시의 기적.
서울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면적은 43만㎡를 넘는다. 이 광대한 땅 위에 선 건축물의 97%가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다. 숫자만 보면 재개발의 논거는 완벽하다. 노후하고, 좁고, 불편하다. 행정의 언어로는 '정비가 필요한 지역'이다. 그 언어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골목은 측량되고, 건물은 번호를 달고, 사람은 보상액으로 환산된다.
그러나 도시는 숫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을지로의 철공소 밀집지대는 단순한 노후 건물군이 아니었다.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장인들의 생태계였다. 한 종류의 부품을 만들 수 없으면 골목 세 개를 돌면 해결됐다. 소량 주문도 받아주고, 도면 없이 말로도 통했다. 이 비공식 제조 네트워크는 스타트업이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소규모 예술가가 작품을 제작할 때, 수리점이 단종된 부품을 구할 때 살아 움직였다.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형의 인프라였다.
물론 반론은 있다. 30년 넘은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위험한 환경에 방치돼 있는 것도 사실이고, 지역 전체의 경제적 활력이 오래전부터 쇠락해온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낡음을 낭만으로만 포장하는 시선이 정작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운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나는 안다.
문제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 도시가 반복해온 방식은 '선 철거, 후 계획'이다. 오래된 것은 일단 지우고, 그 위에 새것을 올린다. 깨끗하고 빠르다. 하지만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서는지 보라. 을지로 한켠에 올라선 신축 건물들의 저층부를 채운 것은 프랜차이즈 카페와 공유오피스다.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 서울 한복판의 유일한 풍경을 밀어냈다. 도시는 더 편리해졌을지 몰라도, 더 비슷해졌다.
유럽의 몇몇 도시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낡은 산업 지구를 허물지 않고, 기존 입주자들과 협약을 맺어 저렴한 임대를 보장하면서 새 기능을 덧입히는 방식이다.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가 그랬고, 런던의 쇼어디치가 그랬다. 그 골목들은 지금도 낡고 불규칙하다. 그리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 '낡고 불규칙함'을 보러 찾아간다. 보존이 관광 상품이 되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삶의 밀도가 풍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을지로의 노포가 사라진 자리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들어선다. 그 '무언가'가 우리가 선택한 도시의 자화상이다. 허물기는 한 세대면 족하지만, 쌓이기는 한 세대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지금 짓는 것이 30년 뒤에도 '살아있을' 수 있는지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재개발이 아니라 반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기억은 건물 속에 있지 않다. 그 건물 안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의 손끝에 있다. 그리고 손끝이 사라지면, 기억도 함께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