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히 들어찬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 시간, 이 마트 셔터는 내려져 있었다. 월 2회 의무휴업일. 그날 주부들은 인근 전통시장을 찾거나 온라인 장보기로 눈을 돌렸다. 지금은 다르다. 마트는 열려 있고, 주차장은 가득 찼으며, 500m 거리 전통시장 골목은 한낮에도 발소리가 드문드문하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는 2012년 도입됐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보호한다는 취지였다. 이후 10년 넘게 대형마트는 매월 두 번, 일요일마다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런데 2023년 말부터 일부 지자체가 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꾸는 실험을 시작했고, 이 흐름은 빠르게 확산됐다. 명분은 소비자 불편 해소와 '실효성 없는 규제 개선'이었다.
마트는 웃고, 시장은 울었나 — KDI가 제시한 숫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6년 5월 발표한 보고서는 이 실험의 결과를 수치로 제시했다. 의무휴업을 평일로 전환한 뒤 대형마트 매출은 대구에서 4.7%, 서울 서초·동대문 지역에서 2.8%, 부산에서 6.2% 각각 증가했다. 대형마트 입장에서는 반가운 수치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함께 짚은 대목이 있다. 같은 기간 인근 전통시장의 유동인구와 매출 지표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수치 너머의 장면은 더 직접적이다. 부산 사하구의 한 재래시장 상인은 "일요일이 그나마 손님이 몰리던 날이었는데, 이젠 대형마트가 열리니 다들 거기로 간다"고 말한다. 평일 전환이 대형마트의 매출을 끌어올린 만큼, 그 수요는 어딘가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구조다.
소비자 편의라는 논리, 그 이면
정책 전환을 지지하는 측의 논거는 명확하다. 맞벌이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을 넘는 상황에서, 주말 마트 휴업은 사실상 장보기 약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형마트 이용 고객 설문에서 일요일 휴업으로 불편을 겪었다는 응답이 과반을 넘었다는 업계 자료도 있다. 규제가 보호하려는 대상이 오히려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 시장을 넘겨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의무휴업일에 쿠팡·마켓컬리 등 새벽배송 주문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규제는 처음부터 허공을 향한 화살이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의무휴업제가 도입된 2012~2015년 사이, 전통시장 방문객 수가 소폭이나마 반등했다는 통계가 있다. 온라인 유통이 지금처럼 압도적이지 않았던 시절, 이 규제는 실제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사이의 경쟁 구도에 개입할 수 있었다. 문제는 유통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데 있다.
규제의 시효는 끝났는가 — 골목상권의 현실
의무휴업 폐지 또는 평일 전환이 단순한 '소비자 편의' 문제가 아닌 이유는 여기 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지금 대형마트보다 온라인 플랫폼과의 싸움에서 더 크게 지고 있다. 규제를 풀어도, 유지해도, 이 구조적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의무휴업이라는 하나의 레버로 유통 생태계의 균형을 잡으려 했던 발상 자체가 이미 시대와 어긋난 것일 수 있다.
KDI 보고서는 정책 대안으로 의무휴업 규제를 유지하되 실효성을 재설계하거나, 전통시장 지원을 직접 지출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규제로 경쟁자를 묶어두는 방식 대신, 전통시장 자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대구 북성로 어시장 한 귀퉁이, 70대 생선 가게 주인은 마트 휴업일이 바뀐 것도, 온라인 배송이 득세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어차피 젊은 사람들은 여기 안 오더라고요.」 문제의 뿌리는 마트가 열리고 닫히는 요일이 아닌 셈이다. 규제 논쟁이 진짜로 다뤄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전통시장을 살리고 싶다면, 무엇을 열고 무엇을 닫아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