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두 명이 3년을 매달린 게임이 스팀(Steam) 출시 첫 주에 판매 순위 100위권에 진입했다. 화려한 그래픽도, 수백억 원의 마케팅 예산도 없었다. 주인공은 손으로 그린 듯한 수채화 배경과 철학적 서사였다. 국내 인디 게임 팀 '썬더볼트 인터랙티브'의 사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어딘가의 작은 작업실에서 반복되고 있는 풍경이다. 넥슨·엔씨·카카오게임즈가 장악한 시장에서, 두세 명짜리 팀이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인가.
독창성이 무기, 하지만 발견되어야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인디게임 이용 경험자는 전체 게임 이용자의 23.3%다. 넷 중 하나는 인디게임을 해봤다는 뜻이다. 이들이 인디게임을 선택한 이유로 '독창적인 콘텐츠'를 꼽은 비율이 38.2%로 가장 높았다. 그래픽이나 브랜드가 아니다. 대형 게임사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다름'이 인디게임의 진짜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 독창성이 시장에 닿기까지의 거리다. 인디 개발팀 대부분은 마케팅 인력이 따로 없다. 개발자가 곧 홍보팀이고, 고객센터다. 유통 창구는 스팀이나 구글플레이로 쏠려 있고, 국내 플랫폼에서 인디게임 전용 큐레이션은 여전히 빈약하다.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만든 게임을 알리는 것이 더 어렵다는 푸념이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끊이지 않는 이유다.
지원 구조의 그늘, 성장 아닌 생존
정부와 지자체의 인디게임 지원 사업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매년 인디게임 제작 지원금과 글로벌 게임허브 입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스타(G-STAR) 내 인디게임 전시 공간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지원 구조는 '시작'에는 손을 내밀지만 '지속'에는 여전히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첫 작품 출시를 마친 팀이 두 번째 게임 개발 자금을 마련하는 구간,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에서 무너지는 팀이 적지 않다.
수익 구조도 불안정하다. 인디게임 개발자의 상당수는 프리랜서이거나 법인 등록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활동한다. 부가가치세 환급, 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 등 제도 혜택이 있어도 이를 실제로 챙기는 소규모 팀은 많지 않다. 세무 지식이 없는 개발자에게 세금 신고 자체가 또 하나의 장벽이다.
그럼에도 흐름은 바뀌고 있다. 스팀의 '한국어 지원 인디게임' 태그 사용량이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늘었고, 해외 인디 게임 행사에서 국내 팀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커뮤니티 플랫폼인 이치오(itch.io)에서 한국 개발자 계정 수가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태계가 살아야 게임도 산다
인디게임의 생존을 개발자 개인의 열정 문제로 좁혀서는 안 된다. 인디게임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환경은 대형 게임사에도 이익이다. 실험적인 메커니즘과 서사 방식이 인디씬에서 검증된 뒤 주류 시장으로 유입되는 경로는 전 세계 게임 산업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패턴이다. '로그라이크' 장르의 대중화, '내러티브 게임'의 부상 모두 인디게임이 먼저 길을 텄다.
국내에서도 플랫폼 기업들이 인디게임 전용 큐레이션 섹션을 강화하고, 퍼블리셔들이 소규모 팀과의 공동 개발·유통 계약에 더 유연하게 나서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디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단순 지원금보다 세무·법무·마케팅 컨설팅을 묶어 제공하는 '종합 인큐베이팅' 방식에 대한 수요가 높다. 돈보다 정보가 더 급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두 명이 3년을 버텨 만든 게임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일, 한국에서 그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 가능성이 운이 아니라 구조 덕분에 실현되는 환경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