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어느 산간 마을의 일흔여덟 이 씨는 일주일에 세 번 병원에 간다. 가장 가까운 내과까지 차로 40분. 버스는 하루 두 번 다니고, 그마저도 읍내에서 세 번을 갈아타야 한다. 이 씨가 운전대를 잡는 것은 고집이 아니다. 생존이다.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제도가 다시 입에 오르고 있다. 논거는 분명하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 한 명이 면허를 반납할 때마다 연간 약 42만 원의 교통사고 사회적 비용이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된다. 숫자가 주는 설득력은 강렬하다. 고령 운전자가 100만 명이라면, 4,200억 원의 사회적 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수치만 보면 답은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정책은 스프레드시트 위에서 살지 않는다. 사람 위에서 산다.

반납을 권고하는 이들의 논리를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반응 속도가 떨어진 운전자, 순간 판단이 흐려진 노인이 도로 위에서 빚어내는 비극은 실재한다. 그 피해는 반납을 거부한 당사자만이 아니라 무고한 타인에게도 돌아간다. 공공 안전의 관점에서 면허 반납을 독려하는 것은 틀린 방향이 아니다.

하지만 「논어」는 말한다. 足食, 足兵, 民信之矣. 먼저 채워야 할 것을 채운 뒤에 신뢰를 요구하라고. 국가가 이동의 수단을 보장하지 않은 채 이동의 자유를 내놓으라 하는 것은, 밥상을 치우고 나서 배고프지 않냐고 묻는 것과 같다.

농어촌 지역의 대중교통 공백은 통계가 아닌 풍경으로 확인된다. 버스가 하루 한 번 다니는 마을, 택시가 없는 면 소재지, 콜밴 한 대를 여덟 명이 나눠 타는 경로당. 도시에서 자란 정책 입안자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 지형 위에서 면허 반납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의 연금이 된다. 집 안에 갇히는 것. 그 고립은 신체적 쇠퇴를 앞당기고, 우울을 키우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서서히 닫아버린다.

제도가 실효를 거두려면 순서가 있다. 수요응답형 교통(DRT), 고령자 전용 이동 지원 서비스, 마을버스 노선 확충 같은 대체 이동 수단이 먼저 착지해야 한다. 면허 반납 인센티브로 교통카드 몇 만 원을 얹어주는 방식은 성의이지, 해법이 아니다. 도시는 그 카드로 지하철을 탈 수 있지만, 지방은 탈 지하철 자체가 없다. 같은 인센티브가 서울과 경북 산골에서 전혀 다른 무게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정책이 외면해선 안 된다.

노인이 운전대를 내려놓는 날, 그 자리에 무엇이 놓여 있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먼저 답하지 않는 한, 면허 반납 제도는 안전을 명분 삼아 이동권을 거둬가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열쇠를 빼앗기 전에, 문을 열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