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봉지를 뜯었을 때 절반이 공기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을 기억하는가. 어린 시절엔 '질소 과자'라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지금 그 봉지는 예전보다 크기가 더 작아졌고, 가격표는 오히려 그대로이거나 올라 있다.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줄어든다는 뜻의 '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inflation'을 합친 이 단어는 이미 전 세계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현상이 됐다. 가격은 손대지 않은 채 중량·용량·개수를 슬그머니 줄이는 방식으로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공식 물가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소비자의 지갑에서는 분명히 빠져나가는데도.

식품업계는 원자재값 상승, 물류비 급등을 근거로 든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업이 비용 압박을 받는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가격 인상이 정치적·사회적 압력을 받는 구조에서 용량을 줄이는 선택이 '현실적 대안'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 논리를 일정 부분 이해한다고 치자.

그러나 문제는 '비용 전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선택의 근거를 잃는다. 500그램이던 제품이 450그램이 됐다면, 소비자는 비교하고 판단할 권리가 있다. 더 비싼 가격표를 보고 다른 제품을 고를 수 있다. 하지만 포장지 디자인이 그대로이고 숫자만 아주 작은 글씨로 바뀌어 있다면? 그것은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선택의 박탈이다.

프랑스는 2024년부터 대형마트에 슈링크플레이션 제품을 별도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해당 제품 옆에 「이 제품은 용량이 줄었으나 가격은 유지되거나 인상되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붙이도록 한 것이다. 영국 소비자단체들도 단위 가격(100g당 가격) 표시 강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소비자원이 실태 조사를 벌이고 경고를 내놓지만, 법적 의무 표시 제도는 여전히 미비하다.

단위 가격 표시제를 강화하고, 용량 변경 시 일정 기간 이를 포장지에 명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대형마트 진열대에서는 자율적으로 100g당 가격을 표기하는 곳도 있다. 문제는 의지다. 제조사도, 유통사도, 규제 당국도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슬쩍 비켜가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소비자의 알 권리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얼마를 내고 무엇을 얼마나 받는지 아는 것. 그것이 시장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그 전제가 흔들릴 때, 불신이 자란다. 기업을 향한 불신, 제도를 향한 불신. 그리고 그 불신은 제품 하나의 용량보다 훨씬 오래, 훨씬 깊이 줄어들지 않는다.

봉지는 작아졌고, 신뢰도 같이 작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