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의 한 사과 농가가 올봄 나무를 뽑아냈다. 이상고온으로 꽃눈이 제때 맺히지 않았고, 착색도 고르지 않아 상품성이 급락했다. 농부가 40년 일군 과수원의 절반이 그렇게 정리됐다. 이 농가의 이야기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농촌진흥청이 2022년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해 내놓은 예측은 충격적이다.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이어진다면, 2070년대에는 사과 재배 적지가 강원도 일부 지역으로 사실상 축소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국산 사과의 대부분을 키워내는 경북·충북 일대 사과 벨트가 수십 년 안에 지도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마늘 역시 주산지인 경남 남해·의성 일대의 재배 환경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한국 요리의 근간을 이루는 두 작물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본지는 이 상황을 단순한 농업 문제로 보지 않는다. 식량 자급률이 이미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에서, 주요 작물의 재배지 교란은 식량 안보 문제로 직결된다. 세 가지 이유에서 지금 당장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기후변화의 속도가 농업의 적응 속도를 압도하고 있다. 과수는 심고 나서 안정적인 수확까지 최소 5년에서 10년이 걸린다. 기상 변화에 맞춰 품종을 바꾸거나 재배지를 이전하는 일은 자본과 시간이 동시에 필요하다. 개별 농가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전환이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품종 개발과 재배지 이전을 설계하지 않으면, 농가는 변화를 뒤따라가다 결국 포기를 택한다.
둘째, 수입 대체는 해법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한반도만의 현상이 아니다. 국제 곡물 시장은 이미 기상이변·지정학 리스크·에너지 가격 상승의 삼중 압박을 받고 있다. 수입에 의존하면 할수록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다. 지난 수년간 반복된 계란값 급등, 수입 식자재 가격 파동이 이를 증명한다. 자급 기반이 무너진 뒤 수입으로 메우는 것은 위기관리가 아니라 위기 방치다.
셋째, 정책의 속도와 현장의 속도가 어긋나 있다. 정부가 한국형 식량 안보 지수(K-FSI) 개발을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하는 등 기반 작업에 나서고 있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지표 개발과 현장 대응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기후 적응형 품종 보급, 재배지 이전 농가에 대한 실질적 지원, 아열대 작물로의 전환 교육 등 구체적 수단이 동시에 가동되어야 한다. 연구가 완성될 때까지 사과밭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 상승폭은 세계 평균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기상 당국의 일관된 분석이다. 이 추세가 꺾이지 않는 한, 작물 재배지의 북상과 소멸은 예측이 아니라 일정이다. 정부는 지금 당장 농업 기후 적응 로드맵을 마련하고, 예산과 행정력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밥상의 위기는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신호는 이미 경북의 사과밭에서 보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