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는 선서를 남겼지만, 선서를 둘러싼 협상 테이블은 그 어디에도 적어두지 않았다. 의사는 고칠 의무가 있고, 국가는 고칠 환경을 만들 의무가 있다. 그런데 두 의무가 서로에게 등을 돌린 지 어느덧 한 해가 훌쩍 넘었다.
2025년 8월, 전국 수련병원의 전공의 모집 결과가 나왔다. 전체 선발 비율은 59.1%, 7,984명이 복귀했다. 수치만 보면 절반은 돌아온 셈이다. 그러나 비수도권 선발 비율은 53.5%에 머물렀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 6퍼센트포인트 안팎의 간극은 단순한 통계 차이가 아니다. 그 숫자 뒤에는 지방 응급실에서 의사를 기다리다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들, 수술 일정이 몇 달씩 밀린 중증환자들이 있다.
의료 공백은 처음부터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대형 수도권 병원은 브랜드와 연구 환경으로 인력을 끌어당기는 자력이 있다. 반면 지방 중소 병원은 그 자력이 약하다. 전공의들이 돌아오더라도 먼저 서울로 향한다면, 지역 의료 공백은 구조적으로 고착된다. 개혁을 논하기 전에 이 불균형의 지형부터 직시해야 한다.
물론 전공의들의 이탈을 단순히 이기심으로 읽는 시각도 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환자 곁을 떠났다는 비판은 무겁고 정당하다. 의료 현장을 지킨 간호사와 의료 보조 인력들의 헌신은 더욱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 비판을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판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돌아오지 않은 40%를 향해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 빈 병동이 채워지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판결이 아니라 협상이다. 정부는 정원 확대의 속도와 방식을, 의료계는 수련 환경과 보상 체계의 현실을 함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철학의 충돌을 정책의 협상으로 전환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지역 의료 붕괴를 막으려면 단순히 전공의를 되돌려 보내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지방 수련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에게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지역 거점 병원의 인프라를 정비하는 구체적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면 복귀율 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벌어질 것이다. '수도권 쏠림'은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의료에서만큼은 그 대가가 생사로 돌아온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역사가 정반합의 과정으로 전진한다고 했다. 정부의 강경 추진이 '정'이고, 의료계의 집단 이탈이 '반'이었다면, 이제는 '합'을 만들 차례다. 그 합이 늦어질수록 대가는 협상 당사자들이 아닌, 응급실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치른다.
비워진 자리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이 가장 크게 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