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패스트푸드점 앞. 일흔셋의 노인이 키오스크 화면 앞에서 3분째 멈춰 있다. 뒤에 줄이 늘어선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배를 곯은 채로. 이것이 지금 한국의 일상이다.

디지털이 편의를 독점하는 속도는 빠르다. 무인 주문기, 모바일 예약, QR 체크인. 아날로그 창구는 하나씩 사라졌고, 그 빈자리에 노년층이 홀로 남겨졌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기술을 누구를 위해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정부가 뒤늦게 움직였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11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소상공인과 소규모 사업장을 포함한 키오스크 접근성 기준을 강화했고, 이른바 '장벽 없는 키오스크 의무화' 제도가 2026년 1월 28일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글씨 크기, 음성 안내, 화면 높이까지 기준이 생겼다. 늦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데 제도가 생겼다고 현실이 바뀌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기준을 충족한 키오스크를 들여놓는다고 노인이 그것을 능숙하게 다루진 않는다. 글씨가 커졌어도 메뉴 구조가 여전히 복잡하면 무용지물이다. 설계의 문제는 규격이 아니라 논리에 있다. 가장 낯선 사람이 가장 쉽게 쓸 수 있어야 진짜 설계다.

포용적 설계(inclusive design)는 장애인이나 노인만을 위한 특별 배려가 아니다. 가장 취약한 사용자를 기준으로 삼을 때 모든 사람이 편해진다는 원칙이다. 경사로가 유모차와 자전거에도 유리하듯, 단순하고 큰 인터페이스는 비장애 성인에게도 쾌적하다. 배제를 없애는 일이 결국 모두를 위한 일이 된다.

한국은 이 논리를 아직 설계 문화로 내면화하지 못했다. 기업은 젊고 빠른 사용자를 기준으로 제품을 만들고, 노년층은 「배우면 된다」는 말로 밀려난다. 그러나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에 육박하는 지금, 이 논리는 시장 실패이자 사회적 낭비다. 그들이 쓰지 못하는 서비스는 그들의 돈도 받지 못한다.

의무화는 시작이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키오스크 하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편리함은 모두의 것」이라는 전제를 산업 전체에 심는 일. 그 전제 없이는 제도가 아무리 촘촘해도 노인은 계속 빈손으로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