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부야의 한 팝업 바에서는 손님이 메뉴판을 보지 않는다. 대신 바텐더에게 「설렘」이라고 말하거나, 「짜증」이라고 속삭인다. 그러면 바텐더가 그 감정에 맞는 칵테일을 만들어 낸다. 주류회사 산토리가 2025년 5월 연 이 팝업 바 '글래스 앤 워즈'의 이야기다. 음료를 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주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이한 가게 앞에 줄이 섰다.

우리는 지금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필요한 것은 이미 다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산다. 아무 기능도 없는 캐릭터 피규어, 먹지도 않을 한정판 과자, 단 한 번 쓰고 서랍에 처박힐 특이한 문구류. 쓸모 없음이 오히려 구매의 이유가 된다.

이것을 충동구매나 낭비로 치부하면 절반밖에 못 본 셈이다. 이 소비의 본질은 기능이 아니라 감정이다. 사람들이 물건에 지불하는 것은 가격표가 아니라 그 순간의 설렘,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 혹은 단지 「나는 여기 있었다」는 흔적이다. 백화점 업황이 20년 만에 최고조를 기록하며 기존 점포 매출이 사상 최대를 찍는 현실은, 소비 자체가 죽은 게 아니라 소비의 문법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감정 소비가 채움이 아닌 순환에 가깝다는 점이다. 설렘을 사고, 다음 주에 또 설렘을 산다. 물건은 쌓이지만 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산토리의 팝업 바가 영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술을 파는 척하면서 사실은 감정 경험을 판다.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날 내가 느꼈던 것」을 기억하게 만든다. 감정을 상품으로 설계한 것이다.

이 흐름은 마케팅 전략의 진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울수록, 정작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인가」를 묻는 능력은 퇴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알림과 콘텐츠 홍수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이름 붙이는 일이 낯설어졌다. 그러니 누군가가 「설렘을 주문하세요」라고 말해주면 반응하는 것이다. 내 감정을 대신 정의해주는 서비스에 사람들이 줄을 선다.

쓸모없는 물건을 사는 것이 비합리적 행동이라는 생각도 재고할 여지가 있다. 경제학적 효용은 기능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어떤 물건은 그것을 집에 가져오는 동안의 두근거림이 효용의 전부이고, 그것으로 충분한 거래다. 단, 그 효용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그리고 그 설렘을 계속 외부에서 조달해야만 하는 구조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그 질문은 남는다.

감정을 사고파는 시장은 앞으로 더 정교해질 것이다. 문제는 소비자가 아니라, 그 감정이 진짜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잘 설계된 상품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이다. 쓸모없는 물건에 열광하는 것은 괜찮다. 다만, 그 열광 속에서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물어봐야 한다. 바텐더에게 감정을 맡기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