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제작비 30억 원. 주연 배우 1인의 출연료가 그 절반을 넘기는 드라마가 이미 낯설지 않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6년 4월 발행한 '2025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32.5%)와 외주 제작사(32.7%) 모두 드라마 제작비 총액이 가장 큰 부담 요인이라고 응답했다. 비율이 거의 같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발주자와 수주자가 동시에 비용 압박을 호소하는 구조. 그 압박의 진원지는 출연료 상단에 집중된 소수의 몸값이다.
왜 몸값은 멈추지 않는가
OTT 플랫폼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화제성 보증 캐스팅'에 대한 수요가 폭등했다. 넷플릭스·디즈니+·웨이브가 동시에 한국 드라마 시장을 두드리던 2020년대 초반, 검증된 A급 배우를 선점하는 일은 곧 글로벌 구독자 확보와 직결된다는 논리가 자리를 잡았다. 결과적으로 상위 20~30명 안팎의 배우에게 출연료가 집중됐고, 이 층위 바깥의 배우·스태프·소품·세트에 배분될 예산은 줄었다.
제작사 입장에서 선택지는 좁다. 플랫폼이나 방송사가 특정 배우를 '조건'으로 내걸면 거절하는 순간 프로젝트 자체가 사라진다. 협상력이 약한 중소 제작사일수록 이 구조에 종속되는 속도가 빠르다. 출연료를 감당하기 위해 후반 작업비를 줄이고, 보조 출연 단가를 낮추고, 작가 계약을 단기화한다. 외형은 드라마이되 내부는 이미 얇아진 상태로 제작이 시작된다.
중소 제작사 도산이 콘텐츠를 어떻게 좁히는가
문제는 비용 압박이 단순히 한 제작사의 수익성 악화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드라마 산업에서 실험적 소재와 신인 작가·감독을 발굴해온 주체는 압도적으로 중소 제작사였다. 대형 스튜디오가 안전한 IP와 검증된 팀을 선호하는 동안, 중소사들이 장르물·비주류 서사·지역 배경 드라마를 시도해왔다. 이 층이 붕괴하면 콘텐츠의 스펙트럼 자체가 좁아진다.
실제로 드라마 편성 라인업을 보면, 지상파 3사와 주요 OTT에서 소수 대형 스튜디오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늘어왔다. 중소 제작사가 참여하는 편수는 줄고, 그나마 살아남은 곳들도 하청 구조에 편입되어 기획력보다 실행력만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다양성은 선언이 아니라 생존 가능한 중간 시장이 있어야 유지된다.
악순환의 고리는 여기서 닫힌다. 중소사가 줄면 신인 등용문이 사라지고, 신인이 없으면 다음 세대의 '검증된 배우'도 나오지 않는다. 플랫폼은 더욱 좁아진 풀에서 같은 얼굴을 반복 기용하고, 그 얼굴의 몸값은 다시 오른다. 구조는 스스로를 강화한다.
균형을 되찾으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업계 일각에서는 출연료 상한제나 수익 배분 연동 계약 방식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제작비 총액의 일정 비율 이상을 주연 출연료에 쓸 수 없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자는 제안도 있다. 그러나 민간 계약 영역에 규제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실효성과 부작용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다 구조적인 접근은 중소 제작사가 독립적 기획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공적 지원의 설계 방식을 바꾸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지금의 지원금 상당 부분은 이미 완성된 프로젝트에 사후적으로 투입된다. 기획 단계부터 리스크를 분담하고, 신인 작가·감독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선제적 투자가 이뤄지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톱스타의 몸값은 시장이 정한다. 하지만 그 시장이 중간을 소거하면서 작동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시장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실패에 가깝다. 지금 한국 드라마 산업이 서 있는 자리가 그 경계선 근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