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벚꽃은 남쪽에서 먼저 핀다. 그리고 먼저 진다. 누군가는 이 순서를 빌려 지방대의 운명을 묘사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말. 처음 들었을 때는 비유가 너무 가혹하다 싶었다. 지금은 그 말이 예언처럼 들린다.

숫자가 먼저 말한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 수도권 일반 4년제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율은 5.3%였다. 비수도권은 10.8%. 두 배다. 빈 강의실이 수도권에서 1만 명분이라면, 지방에서는 3만 명분이 텅 빈다.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다. 캠퍼스 하나가 사라지면, 그 도시의 편의점이 줄고, 원룸 골목이 죽고, 지역 병원의 젊은 의사 지원자가 더 줄어든다. 대학은 그 도시의 심장이었다.

반론은 있다. 「인구가 줄었으니 대학도 줄어야 한다」는 논리, 틀리지 않다.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너무 싸다. 문제는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줄어드느냐다. 수도권 대학은 미충원율이 낮고 재정이 탄탄하다. 지방대만 홀로 쓰러진다. 이것은 자연 도태가 아니라 구조적 방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여기서 '지자체-대학 공생 협약'이라는 모델을 제안하고 싶다. 개념은 단순하다. 지역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대학이 키우고, 지자체가 그 과정을 재정으로 뒷받침하며, 졸업생이 지역에 남을 유인을 제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독일의 「두알레스 아우스빌둥(이원화 직업교육)」이 그 원형에 가깝다. 기업과 학교가 교육을 나눠 맡고, 졸업 즉시 현장에 투입되는 구조. 물론 한국의 제조업 기반이나 지역 산업 생태계가 독일과 다르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원리까지 버릴 이유는 없다.

일부 지자체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지역 특화 학과 신설을 조건으로 운영비를 지원하거나, 지역 정주 졸업생에게 주거비를 보조하는 시도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산발적이고 일회적이다. 필요한 것은 단발 지원이 아니라, 10년 단위의 구조 설계다. 대학이 지역 R&D 거점이 되고, 지자체가 그 성과를 지역 산업에 연결하며, 중앙정부가 재정 인센티브로 이 고리를 고정하는 삼각 구도. 어느 한 꼭짓점이 빠지면 무너진다.

비판자들은 말할 것이다. 「경쟁력 없는 대학을 세금으로 연명시키는 것 아닌가.」 정당한 의심이다. 그래서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대학 스스로 학과 구조를 지역 수요에 맞게 개편하고, 교육의 질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자체의 지원은 '존속을 위한 수혈'이 아니라 '전환을 위한 투자'여야 한다. 그 경계를 지키지 않으면 이 모델은 단순한 모럴 해저드로 끝난다.

지방대가 사라지면 지역이 죽고, 지역이 죽으면 국가의 무게 중심이 수도 하나에 쏠린다. 그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구조인지는, 지진이 나면 가장 높은 건물부터 흔들린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충분하다.

벚꽃은 져도 봄은 온다. 그러나 뿌리가 뽑히면 이듬해 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