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 마트 냉장 코너에서 외국인 주부가 김치 병을 집어 들고 성분표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장면. 뉴욕 맨해튼 한복판 라면 전문점 앞에 점심시간마다 줄이 늘어서는 광경. 이것이 지금 세계 어딘가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한국 음식이 '이국적 별미'의 자리를 벗어나 누군가의 주중 저녁 식탁에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농식품과 농산업을 포괄하는 'K-푸드 플러스' 수출액(잠정)이 136억 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5.1% 증가한 역대 최고 수치다. 불황의 파고가 전 세계 소비 시장을 흔드는 가운데 나온 성과라는 점에서 숫자가 더 묵직하게 읽힌다. 이 액수 안에는 라면·김·스낵·음료·조미료가 들어있고, 그 뒤에는 수십 년 동안 장독 앞에서 손을 담갔던 어머니들의 시간이 압축돼 있다.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K-푸드 열풍은 K-팝과 K-드라마가 만들어준 후광 효과에 불과하며, 콘텐츠 인기가 식으면 식문화 열기도 함께 가라앉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류 콘텐츠가 한국 음식을 세계의 시야 안에 밀어 넣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는 입을 통해 몸에 스며들 때 비로소 생존한다. 한 번 익숙해진 맛의 기억은 드라마 인기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 프랑스 요리가 패션이나 영화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세계 미식의 기준어가 된 것처럼, 음식은 결국 그 자체의 맛으로 자리를 지킨다.

K-푸드의 진짜 무기는 두 가지다. 발효와 감칠맛. 김치·된장·고추장은 서구 소비자들이 '프로바이오틱스'와 '건강식'으로 재발견한 음식 철학의 결정체다. 우마미(umami)라는 개념에 익숙해진 세계 미각이 간장과 멸치 육수의 깊은 층위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 '빠르고 맵고 자극적이지만 어딘가 중독성 있는' 라면과 떡볶이의 조합이 SNS 알고리즘을 타고 Z세대의 주방까지 도달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 수출 전략의 핵심은 '프리미엄화'와 '현지화'의 긴장 관계를 얼마나 영리하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된다. 두부와 고추장을 현지 입맛에 맞게 변형한 퓨전 제품이 시장 진입의 문을 열어주는 반면, 지나친 현지화는 원형을 희석시켜 차별성을 잃게 만든다. 초밥이 캘리포니아 롤로 변주되면서 미국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결국 세계인이 도쿄로 날아가 '진짜 초밥'을 먹으러 가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음식도 변주를 허용하되, 발효·양념·불맛이라는 고유한 언어를 잃어서는 안 된다.

인프라도 따라가야 한다. 수출 물량이 늘어도 현지의 한국 식재료 유통망이 취약하면 소비자는 한 번의 경험으로 그친다. 요리를 해보고 싶은 외국인이 동네 마트에서 고춧가루를 살 수 있어야 K-푸드는 비로소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린다. 한식 요리 콘텐츠를 현지 언어로 생산하고, 요리 교실과 연계하는 소프트 인프라 역시 수출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실질적인 시장 확장의 토대가 된다.

음식은 가장 느린 외교다. 협정서보다 오래 남고, 정권이 바뀌어도 혀에 새겨진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136억 달러는 숫자지만, 그 이면에는 낯선 부엌에서 한국의 맛을 처음 경험한 누군가의 '아, 이거다' 하는 표정이 있다. 그 표정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전략이고, 그것이 쌓이는 것이 문화다.

김치 한 포기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누군가의 식탁에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수천 년이다. 서두를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