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 2패, 조 3위, 최종 34위.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남긴 성적표다. 역대 최하 순위다. 단순히 경기를 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한국 축구의 신뢰가 수치로 무너졌다는 뜻이다. 홍명보 감독의 사퇴는 그 종착점이었다. 그러나 본지는 이 사퇴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고 본다. 대한축구협회의 근본적 인적·구조적 쇄신 없이는, 이 실패는 반드시 반복된다.
첫째, 감독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이 모든 문제의 뿌리였다. 홍 감독 선임 당시 협회는 공개적 검증 절차를 갖추지 않았다. 후보군이 어떻게 추려졌는지, 어떤 기준으로 최종 결정이 내려졌는지 외부에 설명된 바가 없다. 밀실에서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협회는 끝내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국가대표팀 감독은 국민 세금과 팬들의 열정이 뒷받침되는 자리다. 그 선임을 소수가 불투명하게 결정하는 관행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둘째, 성과 책임 체계가 사실상 없다. 대표팀이 월드컵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뒀음에도, 감독 한 명의 사퇴로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협회 집행부는 어떤 책임을 졌는가. 기술위원회는 제 기능을 했는가. 선임 과정에 관여했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조직이 실패해도 개인만 교체되고 구조는 그대로 살아남는다면, 그 조직은 실패를 학습할 이유가 없다. 책임의 범위가 감독 개인에서 협회 행정 전체로 확장되어야 한다.
셋째, 협회 의사결정 구조가 폐쇄적이다. 기술위원회, 전무이사, 협회장으로 이어지는 의사결정 라인이 외부 전문가나 팬·지역 축구계의 목소리를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통로를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선진 축구 연맹들은 이미 외부 감사, 독립 기술위원회, 공개 청문 절차를 도입해 행정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한다. 한국 협회는 그 반대 방향으로 운영돼 왔다는 지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한 번의 부진이 조직 전체를 부정할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그 주장 자체를 본지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실패는 경기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 사후 책임 회피, 폐쇄적 거버넌스가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성적이 나쁘더라도 과정이 투명했다면 신뢰는 지켜질 수 있다. 지금 한국 축구가 잃은 것은 성적만이 아니라 바로 그 신뢰다.
대한축구협회는 지금 단순한 인사 교체를 넘어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 감독 선임 공개 원칙 법제화, 기술위원회 독립성 확보, 집행부 책임 범위 명문화, 외부 전문가 참여 확대. 이 네 가지는 협회가 최소한으로 제시해야 할 쇄신의 설계도다. 새 감독을 뽑기 전에, 누가 어떤 기준과 절차로 그를 뽑는지를 먼저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한국 축구는 2002년 4강의 나라다. 그 자산은 협회의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팬들이 수십 년간 쌓아준 것이다. 그 자산을 소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놀랍도록 짧았다. 되찾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협회가 지금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