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이를 갖는 것이 아니다. 전세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이다. 그 계약서 한 장이 두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 보증금 4억, 월세 120만 원. 수도권 평균 청년 가구의 주거비 현실이다. 숫자가 아니라 선택이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아니면 이 방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저출생 원인 진단과 부동산 정책」 보고서는 이 선택의 구조를 숫자로 증명한다. 첫째 아이 출산 결정 요인 가운데 「주택 매매·전세가」가 30.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고용 불안도, 양육비도 아니다. 집값이 첫 번째였다. 주택 매매가가 1% 오르면 이듬해 합계출산율이 하락한다는 분석도 같은 보고서에 담겼다. 정부가 지금까지 수십 조 원을 쏟아 부은 출산 장려금과 보육 지원이 왜 출산율 반등으로 이어지지 않는지, 그 답이 이 한 줄에 있다.
물론 주거 문제만이 저출생의 전부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젠더 역할의 불평등, 과도한 교육비, 노동시장의 불안정 —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 지적은 옳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라는 이유로 가장 굵은 실을 잡지 않는다면, 실타래는 영영 풀리지 않는다. 집값이 출산 결정의 30%를 좌우한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순서의 문제다.
핵심은 공급의 양보다 공급의 성격이다. 지금까지의 청년 주거 정책은 단기 임시방편에 기울어 있었다. 2년, 4년짜리 지원 주택에 입주한 청년은 계약 만료와 함께 다시 민간 시장으로 내몰린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조건은 안정이다. 10년, 20년, 아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같은 동네에서 살 수 있다는 확신. 그 확신이 출산 결정의 심리적 토대가 된다. 유럽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오스트리아 빈은 전체 주택의 60% 이상을 공공이 소유하고, 장기 저렴 임대를 보장한다. 합계출산율은 한국의 두 배에 가깝다. 우연이 아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은 쉽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분양 위주 정책에서 장기 공공임대 확대로, 수도권 집중에서 직주근접 분산 공급으로, 청년 1인 가구 지원에서 신혼 및 영유아 가구 우선 배정으로. 임대료 상한제와 계약 갱신 안정성이 법제도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공임대 단지 몇 곳을 짓는다 해도 시장 전체의 불안은 줄지 않는다. 정책의 규모가 문제의 규모를 따라가야 한다.
예산 문제를 들어 반론하는 시각도 있다. 장기 공공임대는 재정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맞다. 그러나 저출생으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연금 재정 고갈, 지방 소멸의 경제적 비용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비싼 선택인지는 자명하다. 지금 집값 안정에 쓰는 돈은 투자다. 20년 뒤 쪼그라든 내수 시장과 텅 빈 학교를 수습하는 비용은 몇 배가 될지 모른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물었다. 「누가 파수꾼을 지키는가」라고. 저출생을 걱정하는 우리 사회에 되묻고 싶다. 집 없는 청년에게 아이를 낳으라 말하는 정책은, 과연 누가 감시하고 있는가.
씨앗은 토양이 있어야 싹을 틔운다. 주거 안정 없는 출산 장려는, 콘크리트 위에 씨앗을 던지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