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한 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 나라가 있다. 신혼부부 전세대출, 출산지원금, 다자녀 세제혜택, 육아휴직 급여 확대. 줄줄이 이어지는 복지 메뉴판 앞에서 혼자 사는 사람은 그저 구경꾼이다.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고, 부양할 부모를 모시지도 않는다면—그는 정책이 상정한 '국민'의 외곽에 선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는 이 불편한 현실을 숫자로 확인해준다. 2023년 기준 1인 가구는 782만 9,000가구. 전체 가구의 35.5%로 역대 최고치다. 셋 중 하나는 혼자 산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1인 가구가 된 지 이미 몇 해가 지났건만, 복지 정책의 기본 단위는 여전히 '부부와 자녀'라는 20세기 표준 가족에 머물러 있다.

물론 저출생이 국가 소멸의 위기라는 진단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출산·육아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 1인 가구의 증가와 저출생은 과연 별개의 문제인가. 결혼과 출산이 구조적으로 불리해진 사회—높은 주거비, 불안정한 고용, 촘촘한 돌봄 공백—에서 혼자 사는 이들을 방치한 채 출산율을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은, 강에 댐을 막아두고 하류의 가뭄을 탓하는 것과 다름없다.

1인 가구가 겪는 결핍은 '고독'만이 아니다. 건강 위기 시 응급 연락망 부재, 병원 동행인 없음, 공공임대주택 공급에서 밀리는 순위, 소득 대비 높은 단독 생계 비용—이 모든 것이 구조적 불이익으로 쌓인다. 특히 중장년 1인 가구의 경우 사회적 고립이 심화될수록 의료·돌봄 수요는 늘지만, 그를 연결할 공식 안전망은 사실상 가족이라는 비공식 망에 의존해왔다. 가족이 없으면 그 망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다.

세금은 1인 가구도 낸다. 건강보험료도 낸다. 지역 개발부담금도, 소비세도 낸다. 그런데 돌려받는 복지의 문은 '가구원 수'를 기준으로 좁아진다. 이것이 역설이다. 기여는 개인 단위로 걷으면서, 혜택은 가구 구성을 전제로 설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루는 것이라 했다. 지금의 복지 체계는 그 기준을 거꾸로 적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1인 가구 지원이 결혼 기피를 부추긴다고 우려한다. 혼자도 살 만하면 굳이 가정을 꾸리겠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이 시각은 인과를 뒤집는다. 사람들이 혼자 사는 것은 혼자 살기 편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주거·고용·돌봄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은 리스크로 인식된다. 1인 가구를 지원한다는 것은 곧 그 리스크를 줄여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책 설계에는 '기본 단위'가 있다. 누구를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누가 혜택을 받고 누가 배제될지가 결정된다. 지금 한국의 복지 기본 단위는 아직도 '4인 가족'의 그림자 위에 서 있다. 782만이라는 숫자는 그 그림자 바깥에 선 사람들이다. 그 바깥이 이제는 중심이 되었는데도, 정책의 지도는 갱신되지 않았다.

지도가 영토를 따라가지 못할 때, 사람들은 길을 잃는다. 지금 1인 가구 782만 명이 바로 그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