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사무실에 찾아가도 당직자 한 명 만나기 어렵다. 선거철이 지나면 간판도 내려간다. 유권자가 평소에 정당과 접촉할 창구가 사실상 없다는 뜻이다. 한국 정치의 이 기묘한 공백은 2004년 지구당 폐지 이후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구당이 사라진 명분은 분명했다. 당시 지구당은 '돈 먹는 하마'였다. 상시 운영 비용, 지구당 위원장의 사조직화, 공천을 둘러싼 금품 거래까지. 정치개혁의 이름 아래 지구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풀뿌리 민주주의는 나아졌는가. 솔직히 따져보자.
지방의원은 주민 민원을 당에 전달할 공식 채널이 없고, 신진 정치인은 중앙당 공천 심사라는 깔때기를 통과해야만 정치에 입문할 수 있다. 지역 현안은 국회의원 한 명의 개인 의지에 좌우된다. 중앙 집중화는 오히려 심화됐다. 지구당을 없앴더니 돈 선거가 사라진 게 아니라 돈의 흐름이 중앙으로 집중됐을 뿐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지구당 부활 논의가 다시 불거졌다. 부산시장과 시의회가 취임 첫날부터 충돌하고, 지역 현안이 중앙 정치의 대리전으로 소비되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지역에 뿌리 내린 정당 조직의 필요성이 현실 문제로 떠올랐다. 논의 자체는 타당하다. 문제는 '어떤 지구당'이냐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첫째, 지구당 운영비에 대한 철저한 회계 공개와 외부 감사. 돈이 들어오는 곳에 투명성이 없으면 20년 전 풍경이 재연된다. 둘째, 지구당위원장의 공천 개입 차단. 위원장이 공천권을 쥐는 순간, 조직은 민주주의의 기반이 아니라 사조직의 외피가 된다. 셋째, 당원 직접 민주주의의 실질화. 당원이 지역 의제를 토론하고 후보를 검증하는 구조가 없다면 지구당은 선거 동원 기계에 불과하다.
독일의 지역 크라이스페어반트(Kreisverband), 영국 노동당의 지역 지부(Constituency Labour Party)는 상시 운영되는 당 조직이 어떻게 지역 의제를 중앙 정치와 연결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이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당원이 선거 외 시간에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제공한다. 한국의 지구당 부활 논의가 이 수준의 설계를 담보하고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지구당 복원은 그 자체로 풀뿌리 정치를 살리는 마법이 아니다. 투명한 재정, 독립적 공천, 실질적 당원 참여라는 세 축이 갖춰지지 않으면 그것은 20년 전 실패한 실험의 재탕이다. 제도를 되살리는 것보다 그 안을 무엇으로 채울지가 더 어렵고,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