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는 밤새 줄이 늘어섰고, 『채식주의자』는 품절을 거듭했다. 그러나 책을 손에 쥔 독자들이 첫 장을 넘기던 그 밤, 문학계의 누군가는 다른 질문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이 열기가 내년 봄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혹은 10년 뒤에도 남아 있을까.
흥분은 정직하다. 그러나 짧다. 한국 문학사에도 비슷한 전례가 없지 않다. 1980년대 민중문학의 불길이 거셌을 때, 독자들은 시집을 손에 들고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그 열기가 식자 기초문예 지원 예산은 수십 년간 제자리를 맴돌았고, 번역 인프라는 사실상 작가 개인의 인맥과 행운에 기대었다. 한강이 세계 무대에 서기까지 그 배경에는 데보라 스미스라는 번역가의 헌신이 있었다. 국가가 설계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정부도 이번만큼은 다르게 반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K-문학 해외진출 지원 예산을 대폭 늘려 200억 원을 웃도는 규모로 편성했고, 뮤지컬·문학 분야 해외진출 지원과 정책금융을 합산하면 약 250억 원 규모의 신규 사업이 신설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역시 2026년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을 통해 창작 생태계 강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지원 예산이 늘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완성된 작품의 번역·유통에는 자금이 몰리고, 작품이 탄생하기 전 단계 — 무명 작가의 3년, 소출판사의 적자 편집, 지역 문학의 숨통 — 에는 여전히 빈자리가 많다. 번역 지원도 마찬가지다. 이미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을 영어·프랑스어로 옮기는 데 집중되는 반면, 스웨덴어·아랍어·스와힐리어 번역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중장기 프로그램은 여전히 빈약하다. 노벨상 심사위원단이 어떤 언어권의 번역본으로 한국 문학을 처음 만났는지를 떠올리면, 이 공백이 얼마나 전략적 실패인지 드러난다.
물론 반론은 있다. 「지금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문학은 산업이 아닌 만큼 단기 ROI로 측정할 수 없고, 가시적 성과를 내는 번역·유통 지원이 기반 없는 창작 지원보다 낫다는 논리다. 일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이 논리를 따르면 다음 한강은 또다시 '운 좋게' 나타나야 한다. 시스템이 길러낸 작가가 아니라, 시스템의 틈새를 혼자 버텨낸 작가가 되어야 한다.
문학은 농업을 닮았다. 수확의 해가 화려할수록, 그 이전 수년의 퇴비와 가뭄을 잊기 쉽다. 한강이 빛나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빛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음 씨앗이 묻힐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것이다. 신진 작가 창작 지원금을 늘리고, 소규모 문예지의 존립을 보장하며, 번역가를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 — 이것이 노벨상 이후 한국 문학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의 핵심이다.
꽃은 이미 피었다. 이제 뿌리를 물어야 할 때다. 열풍이 가시기 전에, 서둘러 땅을 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