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는 순간,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교차로를 가로지른다. 주문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3분. 앱은 기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도시 어디서나 반복되지만, 그 바퀴 아래 깔린 위험을 셈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플랫폼 배달 시장은 지난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여러 플랫폼이 시장 점유율을 놓고 경쟁을 벌이며 더 빠른 배달, 더 짧은 도착 시간을 약속했다. 그 약속의 무게는 고스란히 라이더의 몸으로 전가됐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배달·퀵서비스 종사자의 산업재해 발생률은 제조업 평균을 웃도는 수준으로, 빗길과 야간, 과로가 겹칠수록 사고 빈도는 가파르게 오른다. 그러나 이들 상당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돼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적용을 받더라도 실질 보상까지 이르는 문턱이 높다.

반론도 없지 않다. 플랫폼 노동은 시간과 강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것, 진입 장벽이 낮아 다양한 계층의 소득 수단이 된다는 것.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수식어는, 사고가 났을 때 치료비와 생활비를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을 가려서는 안 된다. 자유는 보호 없이 방치와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정부가 2026년 플랫폼 노동자 통합 지원사업에 3억 5,0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명시한 사업이라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배달 플랫폼 한 곳의 연간 광고비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규모의 예산으로 수십만 명에 달하는 플랫폼 노동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상징적 시작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려면, 이 숫자가 해마다 늘어나는 근거와 구조가 필요하다.

2026년 최저임금 논의가 진행 중인 지금, 시급의 숫자만큼이나 중요한 질문이 있다. 사고가 난 라이더가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가. 일을 쉬는 동안 최소한의 소득을 유지할 수 있는가. 플랫폼 기업은 이 비용을 어떻게 분담하는가. 최저임금 협상장에서 이 질문들이 함께 다뤄지지 않는다면, 바퀴는 오늘도 신호를 무시한 채 달릴 수밖에 없다.

칼 폴라니는 시장이 사회를 집어삼키려 할 때, 사회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반응한다고 했다. 플랫폼 경제가 만들어낸 속도 경쟁이 노동자의 몸을 소모품으로 취급할 때, 사회가 내놓는 답이 안전망이다. 그 망의 그물코가 넓을수록 떨어지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통계가 아니라 누군가의 골절이고 누군가의 가족이다.

오늘 저녁 문 앞에 도착한 음식 한 끼. 그 뒤에 붙어야 할 가격은, 배달비 한 줄이 전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