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한 마리를 팔아 남는 돈이 배달 수수료보다 적다. 어느 자영업자의 하소연이 아니라, 배달 플랫폼 수수료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반복되는 현장의 언어다. 주문 한 건에 붙는 중개수수료, 광고비, 결제 수수료를 모두 합산하면 매출의 30%를 넘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업계는 말한다. 작은 분식집 사장이 새벽부터 반죽을 빚어도, 그 이익의 3분의 1은 스마트폰 화면 너머 플랫폼으로 흘러간다.
2024년 11월, 정부가 중재에 나서 꾸린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가 115일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안을 내놓았다. 거래액 상위 35% 업체에는 수수료 7.8%, 하위 20%에는 2%의 차등 구조였다. 수치만 보면 절충처럼 보인다. 하지만 입점업체 단체들은 서명을 거부했다. 플랫폼의 자발적 이행을 담보할 구속력이 없었고, 전체 업주의 절반에 가까운 중간 구간은 사실상 현행 수준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115일의 협상이 낳은 것은 합의가 아니라, 자발적 협력 모델의 한계를 확인한 보고서였다.
이쯤에서 반론을 먼저 들어보자. 플랫폼 기업들은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며 시장을 키웠고, 수수료는 기술 인프라와 마케팅 비용의 정당한 회수라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배달 플랫폼이 없었다면 코로나 봉쇄 시절 수많은 식당이 더 빨리 문을 닫았을 것이다. 플랫폼이 만든 시장 자체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을 만든 공로가 시장을 독점할 권리는 아니다. 국내 배달앱 시장은 사실상 두세 개 플랫폼이 80% 이상을 장악한 과점 구조다. 자영업자는 플랫폼 없이는 주문을 받기 어렵고, 복수의 앱에 동시 등록하면 또 다른 비용이 발생한다. 협상 테이블에서 식당 사장과 플랫폼 기업이 마주 앉는 것은, 세입자와 건물주가 「자유 계약」이라는 이름 아래 협상하는 것과 닮았다. 선택지가 없는 쪽에게 자율 협상은 공정하지 않다.
프랑스 혁명 직전 튀르고가 곡물 자유거래를 선언했을 때, 빵값은 폭등했고 민중은 거리로 나왔다. 시장은 스스로 공정해지지 않는다. 힘의 불균형이 클수록, 보이지 않는 손은 약자의 주머니를 더 깊이 털어간다. 배달 수수료 문제는 자영업자 대 플랫폼의 감정 싸움이 아니라, 디지털 과점 시장에서 힘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해법은 이미 해외에서 실험되고 있다. 미국 일부 주와 캐나다 일부 도시는 코로나 시기 한시적으로 배달앱 수수료 상한선을 법으로 정했다. 유럽연합은 디지털 시장법(DMA)을 통해 대형 플랫폼의 독점적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완벽한 모델은 없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자율에 맡기되 구속력 있는 최저 기준을 법으로 설정하고, 이행 여부를 독립적 기구가 감시하는 구조다. 한국도 상생협의체가 좌초된 지금, 법제화 논의를 더 이상 미룰 명분이 없다.
물론 수수료 상한 법제화가 만능은 아니다. 지나치게 낮은 수수료 규제는 플랫폼의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리고, 결국 소비자에게도 불편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입법은 섬세해야 한다. 단순 상한 규제보다는 거래액·매출 규모에 따른 차등 구조, 알고리즘 광고비의 투명한 공시 의무, 그리고 분쟁 발생 시 신속히 작동하는 조정 기구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법은 칼이 아니라 저울이어야 한다.
상생은 구호가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115일을 논의해도 서명 하나 받지 못한 협의체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선의만으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탄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저울추를 잡을 손이 필요하다. 그 손이 국가여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대안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새벽 네 시에 기름을 달구는 사람이, 낮 열두 시에 알고리즘을 조정하는 사람보다 더 적게 가져가는 세상을 우리는 공정하다고 부를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