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건. 이 숫자 하나가 지금 국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일방 표결로 처리된 안건이 그만큼이라는 뜻이다. 합의가 아니라 수(數)로 밀어붙인 입법의 총량이다. 그 와중에 생계와 직결된 민생 법안들은 여야 대치의 먼지 속에서 조용히 묻혀가고 있다.
2025년 6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은 후반기 원 구성 협상 과정에서 전체 17개 상임위 중 법제사법위원회를 포함한 10개 상임위 배분을 둘러싼 갈등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위원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다수당의 정치적 이해와 직결된 문제다. 그러나 그 협상이 교착되는 순간, 정작 심의해야 할 법안들은 공전한다. 소상공인 지원, 의료비 부담 완화, 청년 주거 안정 — 어느 것 하나 여야가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의제들이다. 그런데도 상임위조차 제대로 구성되지 않아 법안 처리는 미뤄지고, 민생은 기다림의 시간을 강요받는다.
협치의 실패는 단순한 정치 실패가 아니다. 국회가 멈출 때마다 실제 비용을 치르는 건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다. 폐업 위기의 자영업자는 지원책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고, 병원비를 걱정하는 환자는 제도 개선을 기다리다 지친다. 정치의 공백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항상 취약한 쪽이 더 많이 잃는다.
일방 표결이 반드시 위법한 것은 아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그러나 320건이라는 숫자는 타협의 시도를 포기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반대 의견을 설득하거나 수정안을 조율하는 과정 없이 숫자로만 결론을 낸다면, 그 법안의 사회적 수용성은 처음부터 금이 간다. 시행령과 예산 집행 단계에서 반발이 재연되고, 정책 효과는 반감된다. 수로 이긴 입법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다.
야당 역시 자유롭지 않다. 협상 테이블을 떠나거나 전략적으로 공전을 유도하는 방식은, 다수당의 독주를 비판하는 명분을 약화시킨다. 제도를 막는 것이 민생을 지키는 것이라는 논리는, 막힌 제도 속에서 실제로 고통받는 시민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본지는 여야 모두에 촉구한다. 원 구성 협상을 속히 마무리하고, 오랫동안 계류된 민생 법안부터 협의의 장으로 가져오라. 합의가 어렵다면 수정안을 내고, 수정안이 거부되면 공청회를 열어라. 그것이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권한의 진짜 쓰임이다. 정쟁을 멈추라는 말이 아니다. 정쟁과 민생을 동시에 다루는 것, 그것이 입법부의 기본 책무라는 뜻이다.
국회의 존재 이유는 싸움이 아니라 결과다. 320건의 일방 표결이 민생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나마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민생 법안이 표류하는 동안 위원장 자리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라면, 국민이 기억하는 건 결국 그 숫자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