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27세 취업준비생 이모씨는 매달 초 작은 의식을 치른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무지출 달력'을 만들고, 하루도 돈을 쓰지 않은 날에 동그라미를 친다. 한 달에 동그라미가 열다섯 개를 넘으면 그날은 인증 숏폼을 올린다. 조회수가 수만을 넘기는 날도 있다. 그는 이것을 '게임'이라 부른다. 웃으며 말하지만, 그 달력엔 면접 교통비조차 아끼려 집에서 걸어간 날이 표시돼 있다.

이씨의 사례는 극단이 아니다. '무지출 챌린지'는 지금 20대 사이에서 가장 빠르게 퍼지는 소비 문화 중 하나다. 하루 지출을 0원으로 맞추거나 최소화한 뒤 SNS에 인증하는 방식인데, 절약을 콘텐츠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짠테크와 결이 다르다. 고통을 놀이처럼 포장하고, 놀이처럼 보이지만 그 바닥엔 고통이 있다.

청년 고용의 바닥, 숫자로 확인된 현실

배경은 수치로도 뚜렷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3.8%로 전년 동월 대비 2.4%포인트 하락했다. 25개월 연속 하락세다. 청년 실업률은 7%대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여기에 구직을 포기한 '쉬었음' 청년까지 포함하면 사실상의 비경제활동 청년 규모는 통계 수치보다 훨씬 크다는 게 노동 연구자들의 분석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부모에게 손을 벌리기 싫어 생활비를 극도로 줄이는 청년이 늘고 있고, 무지출 챌린지는 그 맥락 위에서 자랐다.

물가 압박도 가세했다. 밥 한 끼 외식비가 1만원을 훌쩍 넘고, 수도권 원룸 월세는 50~70만원을 기본으로 깔고 간다. 고정비를 제하면 남는 돈이 사실상 없는 구조에서, 변동 지출을 0으로 만드는 것이 이들에게 남은 유일한 통제 수단이다.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쓰지 않는 것뿐'이라는 자조가, 챌린지라는 형식을 빌려 인터넷에 퍼진다.

'절약의 게임화' — 공동체 현상이 된 결핍

무지출 챌린지의 특이점은 개인의 다짐이 아니라 집단 퍼포먼스라는 데 있다. 유사한 처지의 청년들이 서로의 인증을 보며 댓글을 달고,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동질감을 얻는다. 결핍을 공유함으로써 연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문화평론가들은 이를 가리켜 「불안의 커뮤니티화」라고 부른다. 힘든 현실을 인정하되, 웃음과 챌린지로 포장함으로써 심리적 거리를 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게임화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일부 청년들은 '무지출 성공'에 집착하다 끼니를 거르거나, 꼭 필요한 지출—병원비, 자기계발비—마저 삭감하는 사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절약이 목표가 아니라 인증 자체가 목표로 변질되는 순간, 챌린지는 건강한 재테크가 아니라 자기 소모의 형태로 바뀐다. 경제적 자립을 향한 몸부림이 도리어 체력과 기회를 갉아먹는 역설이다.

소비 트렌드의 이면 — 시장은 이를 어떻게 읽는가

유통업계와 마케터들은 무지출 청년층을 '잃어버린 소비자'로 볼 것인가, '다음 소비자'로 볼 것인가를 놓고 시각이 갈린다. 소비를 극도로 억제하는 세대가 두터워질수록 내수 기반이 좁아지는 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반면 일부 유통사들은 '무지출족'을 겨냥한 초저가 구독 모델이나 무료 체험 서비스로 이들의 지갑을 미래에 열기 위한 관계 맺기에 나서고 있다. 지금 쓰지 않더라도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더 깊은 문제는 세대 자산 형성에 있다. 20대에 소비를 극도로 줄이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압박의 결과일 때, 그 세대가 30대에 들어서도 소비 여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경제 전체가 치러야 할 비용은 지금의 절약 합계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씨는 오늘도 달력에 동그라미를 친다. 그 동그라미 하나가 아낀 돈은 기껏해야 몇천 원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 아끼고 싶지 않은 것—취업의 기회, 미래에 대한 기대—은 달력 어디에도 표시할 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