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600조 원, 삼성전자 360조 원.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쏟아붓겠다는 민간 투자 합계가 1,000조 원을 넘는다. 대한민국 1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숫자만 보면 압도적이다. 그러나 클러스터가 실제로 가동되려면 15GW에 달하는 전력이 공급돼야 한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10기 이상을 추가로 돌려야 충당할 수 있는 양이다. 돈의 크기와 현실의 간극이 이토록 크다면, 지금 우리가 그리는 반도체 지도가 지도인지 허상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본지는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반도체 경쟁력에 걸어야 한다는 방향성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정책이 선심성 공약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청사진 뒤에 따라붙어야 할 세 가지가 지금 당장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전력과 용수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반도체 팹(fab)은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정전 1초가 수십억 원의 손실로 이어지는 산업이다. 15GW 전력 수요는 현재 한국 전체 발전 설비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며, 여기에 공업용수 수요까지 더하면 기반시설 부담은 상상 이상이다. 클러스터 착공 발표보다 송전망 확충 계획과 용수 공급 로드맵이 먼저 공개돼야 한다. 지금 공개된 것은 투자 금액뿐이다. 그 돈이 흘러갈 땅 밑의 파이프가 비어 있다면 착공 자체가 불가능하다.

둘째, 반도체 전문 인력 확보 계획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메모리에서 파운드리로, 로직에서 패키징으로 생산 영역이 넓어질수록 필요한 인재의 스펙도 달라진다. 국내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은 연간 수천 명 수준에 불과하며, 박사급 연구인력 부족은 이미 산업계의 공통된 경고다. 대학 정원 규제 완화, 해외 석학 유치 패스트트랙, 군 복무 연계 산업기능요원 확대 등 인력 수급 방안이 클러스터 일정표와 같은 속도로 구체화되지 않으면, 짓고 나서 돌릴 사람이 없는 팹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셋째, 지역 상생과 환경 영향 검토가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용인을 비롯한 클러스터 인근 지역 주민은 폭증하는 물 수요, 교통 혼잡, 지가 왜곡을 이미 체감하기 시작했다. 클러스터가 대기업의 이익만 집중시키고 지역 공동체를 들뜨게만 한다면 사회적 저항은 불가피하다. 협력 중소기업 생태계 육성, 지역 고용 연계, 환경 영향 실시간 공개 같은 장치가 뒤늦게 보완책으로 붙는 것이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골격 안에 있어야 한다.

반도체는 땅을 사고 공장을 올리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기가 안정적으로 흘러야 하고, 훈련된 인재가 공정을 운영해야 하며, 지역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성장해야 비로소 클러스터라는 이름이 붙는다. 정부는 지금 당장 투자 규모보다 실행 일정을 공개하라. 15GW 전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10만 명의 전문 인력은 어디서 충원하는가. 그 답이 없다면, 1,000조 원이라는 숫자는 선거철 포스터의 굵은 글씨로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