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8일 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일대는 시간당 100㎜를 넘는 폭우에 반지하 주택이 잠겼다. 지하철 역사가 강처럼 변했고, 도로는 강물처럼 흘렀다. 그 비가 쏟아진 곳은 바로 도림천 유역이었다. 3년이 지난 2026년 6월 23일, 서울시는 같은 자리에서 삽을 들었다.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영등포구 여의도동까지 총연장 4.54㎞, 최대 직경 12m 규모의 '도림천 일대 대심도 빗물터널' 착공식이 열렸다. 땅속 깊은 곳에 거대한 빗물 저장 통로를 뚫어, 다음 극한 호우를 그 아래서 받아내겠다는 계획이다.
직경 12m라는 숫자가 실감이 잘 안 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파트 4층 높이의 원통이 지하를 관통하는 것이다. 이 터널이 완공되면 시간당 최대 95㎜의 강우도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2022년 참사를 유발한 강우 강도에 맞먹는 수준이다.
왜 지금, 왜 대심도인가
서울의 지하 배수망은 대부분 1970~80년대 도시 팽창기에 깔렸다. 당시 설계 기준은 시간당 30~50㎜ 강우에 맞춰져 있었다. 기후변화로 극한 강수 빈도가 높아지면서 이 낡은 망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기존 하수관을 교체하거나 확장하는 방식으로는 좁은 도심 지하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대심도 터널이다. 기존 지하 인프라 아래, 깊게는 지하 30~40m 지점에 별도의 대용량 통로를 뚫는 방식이다.
일본 도쿄는 이미 2006년 사이타마현 가스카베시에 '수도권 외곽 방수로'를 완공했다. 지하 50m, 총연장 6.3㎞, 직경 10.6m 규모로, 완공 후 수해 피해 면적이 약 7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일본 국토교통성은 밝히고 있다. 런던 역시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템스 타이드웨이 터널을 건설했다. 서울의 도림천 터널은 이 같은 선진 사례들을 뒤늦게 쫓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순 모방이 아닌 스마트 운영 체계를 결합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터널만으로는 부족하다 — '스마트 방재'의 조건
대심도 터널은 강력하지만 완전한 해법이 아니다. 터널 입구까지 빗물을 모으는 지선 배수망, 유입량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센서망, 터널 내 수위와 방류 타이밍을 자동 제어하는 통합관제 시스템이 함께 갖춰져야 실효성이 생긴다. 터널이 넘쳐도 지상 배수구가 막히면 소용없다.
서울시는 IoT 기반 하수관 수위 센서와 AI 강우 예측 모델을 결합해 방재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펌프장 가동 시점을 앞당기고, 터널 유입 게이트를 자동으로 개방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국내 일부 지자체에서는 하수관 수위를 5분 단위로 집계해 침수 위험 구역에 문자경보를 발송하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다. 기술은 있다. 문제는 예산과 속도다.
돈이 문제다 — 예산 확보의 현실
도림천 빗물터널 사업비는 수천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서울시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렵고, 국비 지원 비율과 지방채 발행 한도가 사업 속도를 결정짓는다. 방재 인프라는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홍수가 나지 않으면 터널이 제 역할을 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예산 경쟁에서 늘 밀린다.
전문가들은 방재 인프라를 '보험료'로 재정의하는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번의 대형 침수 피해가 수천억 원의 복구비용과 보상을 부르는 구조에서, 사전 투자가 훨씬 경제적이라는 논리다. 실제로 2022년 서울 집중호우로 발생한 재산 피해와 복구 비용은 수백억 원대로 집계된 바 있다. 터널 하나의 건설비와 비교하면 반복되는 피해의 누적 비용이 더 크다는 계산이 나온다.
도림천 터널 착공은 시작이다. 서울에만 침수 취약 하천이 여럿 남아 있고, 부산·인천·대전 같은 대도시 역시 노후 배수망을 안고 있다. 땅속에 묻히는 인프라에 얼마나 과감하게 투자하느냐가, 다음 여름 그 도시가 얼마나 버티느냐를 결정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