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티켓 한 장에 1만5천원. 팝콘과 음료까지 더하면 두 사람이 앉는 데 5만원을 훌쩍 넘긴다. 'OTT로 보면 되지'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시대에, 그럼에도 사람들은 극장으로 갔다. 2024년 상반기, 《파묘》 한 편이 1,191만 명을 끌어모으며 1,151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상반기에만 두 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한 해였다.

이 숫자 앞에서 '티켓값이 너무 비싸다'는 논란은 잠시 멈칫하게 된다. 비싸다고 투덜댔던 사람들이 결국 지갑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갑을 열 이유가 생겼을 때 열었다. 그 이유가 바로 콘텐츠였다.

《파묘》가 건드린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무속, 풍수, 친일의 역사적 상처를 한 프레임에 담은 이 영화는 한국 관객만이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정서의 층위를 갖고 있었다. OTT 어디에도 없는, 극장의 어둠 속에서 옆 사람과 함께 숨죽여야 제맛인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비싼 줄 알면서도' 간 게 아니라, '이건 봐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비용 계산을 멈췄다.

여기서 짚어야 할 역설이 있다. 티켓값 인상에 가장 거세게 반발한 건 '어떤 영화든 극장에서 보던' 충성 관객층이었다. 반면 천만 흥행을 이끈 건 평소 극장을 잘 찾지 않던 이들까지 포함한 더 넓은 대중이었다. 콘텐츠의 힘은 소비 임계점을 낮춘다. 가격 저항을 무너뜨리는 건 할인 쿠폰이 아니라 '이걸 놓치면 손해'라는 감각이다.

한국 영화가 오랫동안 고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감각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극장가는 오랜 침체를 겪었고, 업계 안팎에서는 '관객이 OTT에 빼앗겼다'는 진단이 지배적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파묘》의 흥행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관객이 OTT를 선택한 건 극장이 비싸서가 아니라, 극장에 갈 만한 이유가 없어서였던 건 아닐까.

플랫폼은 콘텐츠를 이길 수 없다. 넷플릭스도, 티빙도, 어떤 스트리밍 서비스도 '지금 이 순간 이 영화를 봐야 한다'는 사회적 동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건 오직 작품 자체가 해낼 수 있는 일이다. 한국 영화 산업이 가격 논쟁에 에너지를 쏟는 동안, 정작 지켜야 할 것은 다른 데 있었다는 얘기다.

천만 관객은 숫자가 아니다. 1,191만 명이 각자의 일상에서 시간과 돈을 쥐고, '이건 가야 해'라고 결정한 총합이다. 그 결정을 이끌어낸 건 마케팅도, 멀티플렉스의 편의성도 아니었다. 스크린 앞에 앉혀놓은 건 결국 이야기였다. 산업이 위기를 논할 때 먼저 물어야 할 것도 그 하나다. 우리에게 지금 충분히 좋은 이야기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