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600원대 진입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던 원/달러 환율이 정부의 구두 개입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 완화 기대감으로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1,500원대에 머무는 환율 수준이 고착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장 외환 위기 가능성은 낮지만, 1,500원대 환율이 '새로운 기준(뉴노멀)'으로 자리 잡을 경우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환율 장기화, 내외부 복합 요인 작용
올해 들어 사상 최대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셀 코리아' 현상과 환율 상승이 지속되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고환율 현상 장기화에는 중동 전쟁 리스크로 인한 달러 강세,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미국의 관세 압박 등 대외적인 요인과 더불어 국내 투자 자본의 해외 유출, 원화 수요 감소 등 내부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서학 개미' 현상, 기업들의 국내 투자 기피 및 해외 재투자, 연기금의 해외 이전 등은 한국 자본시장 전망에 대한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되며,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즉시 환전하지 않고 보유하려는 움직임 또한 위험 관리 차원으로 분석된다.
환율 상승, 서민 경제에 직격탄
경제 전문가들은 시장의 심리가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지적한다. 원화 가치 하락이 예상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을 매도하고 달러를 확보하려 하며, 이는 다시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부정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화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환율 상승은 정부나 투자자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준다.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원화 구매력 저하는 국민의 실질 소득 감소로 이어지며, 이는 중소 상공인과 저소득층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여 가계부채 증가와 서민 경제 붕괴라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외교 역량 총동원해야
전문가들은 1,500원대 환율 고착화를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제시한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와 팬데믹 당시 통화스와프 체결을 통해 고환율 사태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현재 미국은 한국 정부의 통화스와프 제안에 아직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담은 특별법 발효가 임박함에 따라 원화 약세 압력이 더욱 거세질 수 있어,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진력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미국은 '달러 동맹'으로 분류되는 5개국과만 상설 통화스와프를 운영 중이며, 국제 정세 불확실성 증대 속에서 아시아와 중동 지역 동맹국들의 임시 통화스와프 요청에도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며 선뜻 응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 재무부가 아르헨티나와 맺은 특수 통화스와프 계약 사례는 정부가 참고할 만하다. 당시 미국은 아르헨티나가 IMF 최대 채무국으로 재정 건전성이 미흡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남미 최대 우군'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례적인 혜택을 제공했다. 또한, 중동 내 최대 친미 거점 지위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의지를 고려하여 아랍에미리트(UAE)의 통화스와프 요청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 역시 경제적 기준 외에 한미 동맹 강화, 대미 투자 안정성 확보, 한반도의 지정학적 안정 등 정치적 카드를 활용하여 미국 행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