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계부채가 1900조 원을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수치 자체도 문제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방향이다. 금리가 내려가는데도 빚이 줄지 않는다.

금리 인하, 그런데 부채는 늘었다

한국은행은 2024년 10월 기준금리를 3.25%에서 3.00%로 낮춘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 2025년 2월, 5월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2.50%다. 통상적으로 금리 인하는 차입 비용을 낮춰 기존 대출자의 상환 부담을 줄이지만, 동시에 신규 대출 수요를 자극하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이번 사이클에서 후자의 효과가 두드러졌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는 동안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 신용이 다시 팽창했다.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수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고,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 반등이 대출 수요를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리가 더 내려가기 전에 지금 빌리자」는 심리가 작동한 셈이다.

문제는 60대 이상 고령 취약차주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60대 연체율이 단기간에 9.5%포인트 급등하는 등 고령층의 부실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금리가 내려가도 원리금 부담 자체가 줄어드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소득이 감소하거나 고정된 취약계층이 먼저 한계에 달하는 구조다.

스트레스 DSR, 원칙이 흔들리면 신호가 사라진다

정부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제도를 통해 대출 규제의 고삐를 쥐고 있다. 스트레스 DSR은 미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한 가산금리를 적용해 차주의 실질 상환 능력을 더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며 과잉 대출을 억제하는 것이 본래 설계 의도다.

그러나 이 제도의 실효성은 일관성에 달려 있다. 경기 부양 압력이 커지거나 부동산 시장이 위축될 때마다 규제 완화 요구가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금은 예외적 상황」이라는 논리로 규제가 조금씩 후퇴할 때, 시장이 받아들이는 신호는 명확하다. 규제는 결국 타협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신호가 굳어지면, 이후 어떤 대출 규제도 충분한 억지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은 수년째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 비율을 거시건전성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해 왔다. 이들 기관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처방은 단순하다.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게 건전성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감당할 수 있는 빚」의 기준이 흔들리면

가계부채 문제를 단순히 총량의 문제로만 보면 핵심을 놓친다. 1900조 원이라는 숫자 안에는 저금리 시절 한계를 넘어 빌린 부채,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담보 가치가 순식간에 잠식되는 대출, 소득 없이 이자만 버텨온 차주들이 섞여 있다. 금리 인하가 이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추가 차입을 유인함으로써 같은 문제를 더 큰 규모로 이월시킬 수 있다.

대출 규제의 일관성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스트레스 DSR을 포함한 거시건전성 수단은 개별 차주의 차입을 막는 도구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 부채의 총량을 관리하는 안전망이다. 이 안전망을 경기 상황에 따라 수시로 조이고 풀기를 반복하면, 그것이 안전망인지 아닌지 아무도 믿지 않게 된다.

기준금리는 앞으로도 추가 인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국면일수록 대출 규제의 무게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이, 1900조 원의 다음 자리 숫자를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어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