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국은 방산 수출 173억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9위 무기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2년 전만 해도 30억 달러 수준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5배 넘게 뛴 수치다. K9 자주포, K2 전차, FA-50 경공격기가 유럽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동시에 두드리는 동안, 한국 방산 업계는 조용히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무기를 파는 나라에서, 무기를 함께 만드는 나라로.
폴란드·루마니아에서 검증된 '현지화' 모델
K-방산 수출의 전환점은 폴란드였다. 2022년 체결된 K2 전차·K9 자주포 공급 계약은 단순 납품에 그치지 않았다. 2차 계약부터는 폴란드 현지 조립 및 부품 생산 참여가 명시됐다. 폴란드 측은 자국 방위산업 기반을 키우겠다는 조건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고, 한국 방산 기업들은 이를 수용했다. 결과적으로 계약 규모는 유지하면서도, 현지 파트너십이라는 새로운 관계 구조가 탄생했다.
루마니아 역시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다. 루마니아 국방부와 한국 방산 업체 간에 체결된 기본 협정에는 현지 조립공장 설립과 생산 공정 현지화 추진이 포함됐다. 나토(NATO) 회원국이자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루마니아는 자국 방위 역량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한국의 중급 기술·가격 경쟁력은 유럽산 고가 장비와 중국산 저가 장비 사이에서 선명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로 뻗는 수출 지형… 인도네시아가 시험대
유럽이 K-방산의 물량 확장을 이끌었다면, 동남아시아는 다음 전선이다.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체계인 천궁-II에 대한 구매의향서(LOI)를 발급했다. 천궁-II는 국내에서 독자 개발한 방공 시스템으로, 해외 수출이 현실화될 경우 고부가가치 기술 이전 협상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7000만 명,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권으로 방산 수입국 중에서도 전략적 비중이 작지 않다.
문제는 인도네시아가 전통적으로 기술 이전과 절충교역(오프셋)을 강하게 요구하는 국가라는 점이다. 과거 KF-21 전투기 공동개발에서도 분담금 납부와 기술 공유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다. 천궁-II 협상에서도 비슷한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 단기 수출 실적보다 장기 관계 설계가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무기 판매'를 넘어야 지속 가능하다
K-방산이 직면한 핵심 과제는 명확하다. 지금의 수출 급성장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재무장 수요라는 외부 변수에 상당 부분 기댔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끝나거나 유럽 자체 생산 역량이 회복되면, 단순 공급자로서의 수요는 줄어들 수 있다. 반면 현지 조립·기술 협력·합작 생산 방식으로 엮인 파트너십은 계약 한 건으로 끊기지 않는다.
방산 선진국들의 사례는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과 프랑스가 장기간 방산 수출 강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좋은 무기를 파는 게 아니라, 수입국의 군사 체계 전반에 자국 플랫폼을 이식했기 때문이다. 정비, 부품, 업그레이드, 훈련까지 이어지는 생태계 구조가 고객을 묶어둔다.
K-방산이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 시작한 현지화 실험은 그 방향을 향한 첫 발이다. 그러나 현지 생산이 자국 일자리를 줄인다는 국내 방산 업계 일부의 우려도 현실이다. 기술 유출 위험 관리, 핵심 부품의 국내 생산 유지, 현지 파트너 선정 기준 등 풀어야 할 실무 과제는 산적해 있다. 수출 지도가 넓어질수록, 전략의 정밀도도 같이 높아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