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8일, 국회 본회의. 재석 213명 중 198명이 손을 들었다. 찬성률 93%. 여야가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은 드문 일이다. 안건은 지역 사무소, 즉 지구당 부활을 골자로 한 정당법 개정안이었다. 반대는 단 15표. 정치권이 오랫동안 '필요악'처럼 묻어뒀던 지구당이 20여 년 만에 다시 법제도 위로 올라왔다.
지구당은 2004년 폐지됐다. 명분은 분명했다. 당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지구당 한 곳을 유지하는 데 연간 수억 원이 소요되고, 지역 유지·보스 중심의 금품 동원 구조가 지속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폐지 이후에도 의원들은 '당원협의회'라는 사실상의 대체 조직을 운영해 왔지만, 이 역시 음성적 운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조직은 살아있었고, 돈도 흘렀다. 다만 투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왜 지금, 왜 다시
지구당 부활론의 표면적 근거는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다. 지역 주민과 당원이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식 채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당원협의회는 법적 지위가 없어 공식 후원금 수령이 제한되고, 활동 내역 공개 의무도 약하다. 이를 양성화하면 오히려 투명성이 높아진다는 논리가 찬성 진영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전제가 빠져 있다. 양성화 자체가 투명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공식 조직이 생기면 후원금 모집 창구도 공식화된다. 문제는 그 창구를 통해 들어오는 돈이 어디로, 어떻게 쓰이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장치가 있느냐다. 현재 논의되는 정당법 개정안에 후원금 공개 주기 단축이나 지출 내역 온라인 즉시 공개 의무 조항이 포함됐는지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찬성표를 던진 198명 중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한 의원은 많지 않다.
2004년과 달라진 것, 달라지지 않은 것
2004년 이후 정치 환경은 일부 바뀌었다. 소셜미디어가 지역 소통 채널을 대체했고, 온라인 당원 가입이 보편화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지방 조직의 디지털 전환이 오히려 비용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였다는 사례가 보고된다. 독일의 경우 지역 당 조직 활동 내역을 연방 선관위에 분기별로 의무 제출하고, 일정 금액 이상 후원은 실명으로 즉시 공개한다.
한국의 현행 정치자금법은 후원금 수입·지출 내역을 연 1회 선관위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수백 개의 지역 조직이 새로운 후원금 수령 주체로 등장한다. 연 1회 보고 체계에서 이를 실질적으로 감시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선관위 인력과 예산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감시 대상만 늘어나는 셈이다.
안전장치 없는 부활은 되풀이다
지구당 폐지 이전, 국고보조금과 별도로 지역 조직이 자체 조달하는 자금이 선거 때마다 문제가 됐다. 공식 집계에 잡히지 않는 돈이 행사비·식대·교통비 명목으로 빠져나갔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이 구조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합법적 외피를 두른 채 더 정교해지는 것인지는 설계에 달려 있다.
최소한 세 가지 장치는 법 시행 전에 명문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첫째, 후원금 수입·지출의 분기별 실시간 공개. 둘째, 지구당 유급 사무원 인건비 상한선 설정. 셋째, 선관위의 현장 감사 권한 강화와 이에 따른 인력·예산 확충이다. 이 세 가지가 법안에 담기지 않는다면, 198명의 찬성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복원이 아니라 조직 정치의 부활을 승인한 것으로 기록될 수 있다.
표결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시행령과 세부 규정이다. 그 안에 얼마나 촘촘한 그물이 쳐지느냐가 이번 부활이 개혁인지 회귀인지를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