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6만 명이던 우리 군 상비병력이 2025년 7월 기준 45만 명으로 줄었다. 6년 만에 11만 명이 빠져나갔다. 사단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규모다. 국방부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자료가 확인해 준 이 수치는, 징병제를 떠받쳐 온 핵심 전제 — '충분한 젊은 남성 인구' — 가 이미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속도다.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내려앉은 지금, 20년 뒤 입영 대상자가 될 2024년생 남아는 연간 11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추계가 나온다. 지금도 버거운 숫자가 앞으로는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 수 있다는 뜻이다. 징병제는 설계 자체가 대규모 인구를 전제로 한 시스템이다. 그 전제가 무너지면 제도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흔들린다.
징병제의 구조적 한계: 숫자의 문제에서 질의 문제로
현 체제의 위기는 단순한 머릿수 부족에 그치지 않는다. 병력이 줄어들면 개인에게 돌아가는 부담은 역설적으로 늘어난다. 복무 기간 단축 논의가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복무 기간을 줄이면 숙련도가 낮아지고, 숙련도가 낮아지면 현대전 대응 역량이 약해진다. 드론 전쟁, 사이버전, 정밀유도 무기 중심으로 재편된 전장에서 단기 복무 소총수가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흐름을 명확히 드러냈다. 소모적 대규모 보병 전투의 실상과 함께, 드론 운용·전자전·실시간 정보 분석 능력이 전황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숫자가 아니라 기술이 싸우는 전쟁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한 것이다. 이 맥락에서 한국군의 현 구조를 들여다보면, 50만 명 안팎의 병력 유지에 쏟아붓는 예산과 행정 비용 대비 실질 전투력 산출 효율에 대한 냉정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모병제 전환, '선택'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 문제다
모병제 논의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논의가 이전과 다른 점은, 더 이상 이념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 산술의 문제가 됐다는 사실이다. 징병 자원이 물리적으로 줄면, 국가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성 징병 등 징병 대상을 넓히거나, 직업군인 중심의 모병제로 전환하거나.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사실상 폐지했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재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대만은 징병 기간을 1년으로 되돌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각국의 선택은 지정학적 위협 인식과 재정 여력, 그리고 무엇보다 병력 자원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한국이 처한 조건 — 휴전선을 마주한 분단 상황, 급속한 저출생, 기술 집약적 방위산업 기반 — 은 단순 비교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은 아니다.
단계적 전환론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투 병과를 중심으로 직업군인 비율을 높이고, 의무 복무자는 기술·지원 분야로 재배치하는 혼합 모델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동시에 AI 기반 감시 체계, 무인 전력, 사이버 방어 인력에 투자를 집중하는 「과학기술군」으로의 전환을 병행해야 한다는 논의도 힘을 얻고 있다. 방위사업청의 유·무인 복합 체계 개발 계획이나 드론봇 전투 체계 구축 방향이 그 출발점으로 언급된다.
핵심은 타이밍: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는가
모병제 전환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 군 조직 재편, 처우 개선을 통한 지원자 확보, 예산 구조 전환까지 최소 10년 이상의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것이 국방 연구기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문제는 병역 자원 감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2030년대 중반이면 20대 남성 인구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구조가 이미 확정돼 있다.
45만 명. 이 숫자가 더 내려가기 전에, 한국 사회는 어떤 군대를 원하는지 물어야 한다. 「많은 병사」와 「강한 군대」가 더 이상 같은 말이 아닌 시대에, 선택을 미루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