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지난해 학부모로부터 하루 평균 세 통 이상의 전화를 받았다. 수업 중 아이가 친구와 다퉜다는 이유였다. 교권보호위원회에 신청을 냈지만, 절차가 시작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두 달이 넘었다. 그사이 A씨는 혼자 감당해야 했다.
2023년 9월, 이른바 '교권 5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교원지위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교육기본법·아동복지법 등 5개 법률을 개정해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차단할 수단을 마련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촉발한 사회적 충격이 입법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그로부터 약 1년 반이 지난 지금, 현장 교사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어느 정도일까.
바뀐 것들: 구조가 생겼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신청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는 점이다. 개정 교원지위법에 따라 교권보호위원회는 교육지원청 단위로 격상됐고, 교사가 민원으로 인한 피해를 입으면 학교장에게 고지하고 교육청 차원의 보호 조치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교권보호위원회 심의 건수는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 교사들이 문제 상황을 외부에 알리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아동복지법 개정도 의미 있는 변화를 낳았다. 기존에는 교사의 정당한 지도 행위가 아동학대 신고 대상이 될 수 있어 교사들이 극도로 위축돼 있었다. 개정법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교육계에서는 이를 가장 실질적인 변화로 꼽는다.
바뀌지 않은 것들: 여전히 교사 혼자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복잡하다. 구조는 생겼지만 속도가 문제다. 교권보호위원회 신청부터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기까지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공백 동안 교사는 민원인과 동일한 공간, 동일한 관계망 안에 있어야 한다. '보호 조치'가 뒤따라오는 동안 소진은 먼저 일어난다.
악성 민원의 형태도 진화하고 있다. 학부모의 직접 전화나 방문 민원은 줄었지만, SNS를 통한 비방, 교육청 민원 시스템을 활용한 반복 민원, 교사 개인 연락처로의 접촉 시도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교원단체들은 민원 응대 자체를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 또는 교육청이 일원화해서 처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예산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리 지원 체계도 과부하 상태다. 교육부는 교원치유지원센터 운영을 확대했지만, 실제로 이용하려는 교사들이 몰리면서 상담 예약이 수주씩 밀리는 곳이 생겨났다. 치유가 필요한 시점에 치유를 받지 못하는 역설이다.
법 이후의 과제: 실행력이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교권 5법의 방향 자체는 옳지만, 법 조항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실행 주체의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장이 교권보호위원회 신청을 독려하지 않거나, 학교 관리자가 민원을 '내부에서 해결'하려는 관행이 남아 있으면 법은 서류 위에만 존재한다.
일부 교육청은 전담 법률 지원단을 운영하며 교사가 직접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변호사 선임 비용 지원, 민원 대응 매뉴얼 보급, 관리자 연수 강화 등을 통해 법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런 지원이 어느 지역에서는 체계적으로 작동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교권 보호의 질이 교사가 근무하는 지역에 따라 갈린다는 것, 이것이 지금 교실의 현실이다.
법은 교사에게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데 드는 비용, 즉 절차의 피로와 보복성 민원의 공포와 관리자와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할 용기까지 법이 줄 수는 없다. 다음 학기가 시작되는 날, A씨의 전화는 다시 울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