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2조 6,499억 원. 숫자만 보면 성공 서사다. 그런데 같은 해 영업이익은 499억 원으로 전년 대비 73% 쪼그라들었다. 하이브가 2025년 연결 기준으로 거둔 성적표다. 외형은 역대 최대, 수익성은 급격히 후퇴. 이 역설이 K팝 제작 시스템의 현주소를 압축한다.
멀티레이블, 팽창의 구조
\p>하이브가 구축한 멀티레이블 체제는 산하에 복수의 독립 레이블을 두고, 각 레이블이 고유한 색깔로 아티스트를 기획·육성하는 방식이다. 빅히트뮤직, 쏘스뮤직, 플레디스, 어도어, KOZ 등이 모두 하이브라는 지붕 아래 존재하지만 브랜드와 제작 방향은 별개로 운영된다. 이론적으로는 효율적이다. 팬덤이 분산되고, 한 그룹의 공백기를 다른 그룹이 메우며, 글로벌 시장에서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실제로 이 구조는 K팝의 외연을 넓혔다. 산하 레이블들이 미국·일본·동남아 시장에 동시다발적으로 진출하면서, 단일 기획사 체제로는 불가능했던 규모의 팽창이 가능해졌다. 매출 2조 원을 넘기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한국에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멀티레이블 전략의 산물이기도 하다.
균열은 어디서 시작됐나
문제는 팽창 속도가 거버넌스 설계보다 빨랐다는 점이다. 지주사와 레이블 사이의 권한 배분, 아티스트의 창작 자율성 보장 범위, 수익 배분 구조—이 세 가지가 명확히 정립되기 전에 조직이 먼저 커졌다. 그 결과 아티스트와 레이블, 레이블과 지주사 사이의 긴장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24년을 전후해 불거진 업계 내 갈등은 창작자의 자율성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아티스트 측은 기획 방향과 콘텐츠 결정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원했고, 지주사는 브랜드 통일성과 투자 회수 논리를 앞세웠다. 이 구조적 마찰이 일회성 비용과 신규 투자 손실로 재무제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업이익 73% 감소는 단순한 비용 증가가 아니라, 조직 균열의 경제적 번역이다.
K팝 제작 생태계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들은 멀티레이블 모델의 핵심 취약점으로 「레이블 대표의 권한 범위가 계약서에는 명시돼 있지만, 실제 의사결정에서는 지주사의 개입이 비공식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꼽는다. 창작 자율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을 때, 재능 있는 프로듀서나 아티스트는 결국 이탈한다. 그 이탈 비용이 지금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 모델은 가능한가
비교 사례는 있다. 유니버설뮤직그룹(UMG)은 산하 레이블에 상당한 독립성을 부여하면서도, 지주사 차원에서 유통·마케팅·법무 기능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창작 자율성과 규모의 경제를 동시에 확보했다. 핵심은 창작 결정권을 레이블에, 인프라 효율화를 지주사에 명확히 분리한 것이다. 한국형 멀티레이블이 참고할 만한 구조다.
물론 K팝은 서구 팝 시장과 다르다. 아티스트의 퍼소나 관리, 팬덤과의 직접 소통, 콘텐츠 IP의 복합적 수익화—이 모든 것이 제작 단계부터 통합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레이블이 지주사와 완전히 독립하기도 어렵고, 지주사가 레이블을 완전히 통제하면 창작 동력이 죽는다. 이 긴장을 제도적으로 설계하는 것, 그것이 다음 세대 K팝 거버넌스의 과제다.
2조 6천억 원의 매출이 증명하는 것은 K팝 시스템의 생산력이다. 499억 원의 영업이익이 경고하는 것은, 그 생산력이 지금 갉아먹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형을 유지하면서 내부를 재설계할 시간은 길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