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수출액이 3년 새 두 배로 불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의 라면 수출액은 전년 대비 21.8% 증가해 15억 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봉지 하나에 담긴 면발이 북미·유럽·동남아 시장을 휩쓸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내 마트 진열대에서는 특정 라면 제품이 사라지고, 남은 제품의 가격표 숫자는 조용히 오르고 있다.
수출이 키운 수요, 국내 공급이 감당하지 못하다
K푸드 수출 급증의 구조적 문제는 생산 능력의 한계에서 시작된다. 국내 식품 제조사 대부분은 내수 수요를 기준으로 설비를 갖춰왔다. 그러나 넷플릭스 드라마 흥행과 한류 콘텐츠 확산이 해외 수요를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면서, 공장 가동률은 이미 상한선에 근접했다. 수출 물량을 늘리려면 내수 공급을 줄이거나, 내수 가격을 올려 자연스럽게 수요를 분산시키는 선택지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 수익성이 높은 수출 시장을 우선 배분하는 것은 합리적 결정이다. 하지만 그 합리성의 비용을 치르는 쪽은 국내 소비자다.
김(海苔) 시장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한국산 김은 미국·중국·일본·동남아시아에서 건강 스낵으로 자리를 굳히며 수출이 빠르게 늘었다. 수출용 고급 조미김 생산이 확대되면서 원초(原草) 수급 경쟁이 심화됐고, 국내 소비자가 구매하는 식탁용 김의 가격은 최근 수년 사이 눈에 띄게 올랐다. 수출 성과 뒤에서 조용히 벌어지는 일이다.
가격 상승의 구조: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나
이 구조를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수혜자와 피해자가 선명하게 갈린다. 수출 주도 식품 기업은 해외 프리미엄 가격과 환율 효과를 동시에 누린다. 달러·유로·엔화로 결제되는 수출 대금은 원화 약세 국면에서 추가 수익을 안긴다. 반면 국내 소비자는 같은 제품을 더 비싼 값에 사거나, 물량 부족으로 원하는 시점에 구매하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한다.
문제는 이런 품목이 라면·김처럼 서민 식탁의 기본 재료라는 점이다. 가격 탄력성이 낮은 필수 식품일수록 수출 확대에 따른 국내 가격 전가 효과는 더 직접적으로 체감된다. 고소득 가구에는 사소한 가격 변동이지만, 식품비 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 가구에는 생활비 압박으로 연결된다. 수출 성과가 만들어내는 불평등한 부담 배분이다.
단기 처방과 구조적 과제 사이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수출 유망 품목에 대한 생산 설비 확대 투자를 지원하고, 해외 생산기지 구축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정책 무게가 이동하고 있다.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면 국내 물량을 수출로 전용하는 압력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일부 대형 식품사는 이미 미국·베트남 등지에 현지 공장을 세우거나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공장이 실제 가동되어 공급 압박을 흡수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설비 투자→허가→가동까지의 리드타임 동안, 국내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과 공급 불안은 그대로 남는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수출 호조를 자축하는 보도 자료가 아니라, 내수 시장 보호 기준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논의다.
K푸드의 글로벌 인기는 분명 한국 식품 산업의 실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런데 그 성과가 국내 식탁을 더 비싸게 만드는 방향으로 귀결된다면, 수출 통계 너머에서 무언가가 잘못 설계된 것이다. 밥상 위로 돌아온 청구서를 누가 내야 하는지, 지금은 그 질문이 먼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