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 나라는 만 20세 남성 37만 명을 군문(軍門)으로 보냈다. 10년이 지난 2025년, 그 숫자는 23만 명이다. 도시 하나 규모의 청년이 병역 자원 목록에서 조용히 지워진 것이다. 그리고 통계청 추계가 틀리지 않는다면, 2040년에는 13만 8,000명 선까지 무너진다. 수치는 건조하지만, 함의는 폭발적이다.
군은 숫자로 존재한다. 전선을 지키는 것은 의지만이 아니라 몸이고, 몸의 수(數)다. 현재 50만 명대 병력을 유지하는 구조에서 입영 자원이 30% 넘게 줄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인구통계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국가 안보 설계의 수학 자체가 틀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아무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을 뿐, 현장의 수치는 이미 경보를 울리고 있다.
그런데도 병역 제도 개편 논의는 여전히 금기의 언어로 취급된다. 모병제를 꺼내면 「안보 불감증」이라는 딱지가 붙고, 여성 징병을 언급하면 「젠더 갈등 조장」이라는 반박이 쏟아진다. 토론이 시작되기 전에 입이 막히는 구조다. 하지만 논의를 금기로 묶어두는 사회는 결국 현실에 뒤통수를 맞는다. 역사가 그것을 반복해서 증명해왔다.
모병제 반대론자들의 논거는 분명히 귀 기울일 만하다. 직업군인 중심 체제는 지원자 확보가 불안정하고, 인건비 급증으로 전력 공백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징병제가 지닌 「국민개병(國民皆兵)」의 상징성, 즉 공동체 구성원이 안보 부담을 나눈다는 사회 계약적 가치도 쉽게 버릴 수 없다. 이 반론은 진지하게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행 체제를 지키자는 주장 역시 전제를 점검해야 한다. 「유지」는 전제 조건이 충족될 때만 가능하다. 사람이 없으면 징병제는 껍데기다. 입영 자원이 반 토막 나는 구조에서 복무 기간만 늘리거나 복무 강도만 높이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미봉책(彌縫策)이 반복될수록 제도의 내부는 조용히 썩는다.
노르웨이는 2016년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이스라엘은 수십 년째 남녀 모두 군 복무를 이행한다. 스웨덴은 2010년 모병제로 전환했다가 2018년 혼합 징병제로 되돌아왔다. 이 사례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다. 안보 환경과 인구 구조에 맞게 제도는 진화해야 한다는 것.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논의를 멈추는 순간 국가는 선택지를 잃는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지금 필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이다. 모병제냐 징병제냐, 여성 징병이냐 아니냐를 당장 결정하라는 게 아니다. 다만 「13만 명으로 50만 병력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눈을 감지 말라는 것이다. 군이 조용히 감축 계획을 짜는 동안, 사회는 아직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그 간극이 가장 위험하다.
성벽은 돌로만 쌓이지 않는다. 그 안에서 싸우겠다는 사람들의 숫자와 의지로 쌓인다. 그 숫자가 줄어들 때, 우리는 벽의 높이가 아니라 벽을 세우는 방식 자체를 다시 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