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열 명 중 셋이 전공 없이 캠퍼스에 들어선다. 정부가 무전공(자유전공) 선발 비율을 대학 재정지원 평가와 연동시키면서 벌어진 일이다. 선택의 자유를 주겠다는 취지는 그럴듯하다. 그런데 묻고 싶다. 지도도 없이 산에 올려보내는 게 자유인가, 방치인가.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곱지 않다. 일부 대학에서 무전공 입학생들이 호소하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수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다는 것, 학과 공동체에 속하지 못해 소속감을 잃는다는 것, 그리고 「나는 무엇을 공부하는 사람인가」라는 학문적 정체성의 혼란이다. 이 세 가지는 개인의 결단력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융합 교육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 인프라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전담 지도교수 제도, 전공 탐색을 위한 체계적 교육과정, 그리고 학과 간 벽을 허무는 행정 시스템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허술하면, 학생은 1~2학년을 표류하다 인기 전공 앞에서 밀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경영학과와 컴퓨터공학과로의 쏠림은 이미 여러 대학에서 현실이 됐다. 자유 선택이 아니라 생존 선택이다.
더 큰 우려는 기초학문에 있다. 철학과, 사학과, 물리학과처럼 당장 취업이 보이지 않는 학과들은 무전공 체제에서 가장 먼저 위축된다. 학생이 오지 않으면 강의가 줄고, 강의가 줄면 교수 자리가 사라진다. 이 악순환은 조용하고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위기가 수면 위로 드러날 때쯤이면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2025년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프라 없는 무전공 확대는 학문 생태계의 다양성을 빠르게 훼손할 수 있다는 경고다.
대학 자율성이라는 말도 다시 봐야 한다. 정부가 재정지원을 조건으로 특정 방식의 선발 비율을 강제하면서 「자율」이라고 부르는 건 형용모순에 가깝다. 진짜 자율성이란 각 대학이 자신의 교육 철학과 학생 특성에 맞게 무전공 제도를 설계하거나, 때로는 채택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한다. 획일적 확대 로드맵은 다양성을 키우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줄 세우기를 만들 수 있다.
물론 무전공 제도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잘 설계된 자유전공 체제는 학생에게 진짜 선택의 경험을 주고, 경직된 학과 구조를 흔드는 힘이 된다. 문제는 순서다. 제도가 먼저 달리고 인프라가 뒤따라가는 구조라면, 그 사이에 끼는 것은 학생들이다.
씨앗을 뿌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한다. 지금 여러 캠퍼스에서 싹이 트기도 전에 흙이 굳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