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혼자 숨진 채 발견된 사람이 3,924명이다. 하루 평균 열 명 이상이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했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가 공식 확인한 수치다. 이 숫자는 교통사고 사망자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런데도 사회는 여전히 고독사를 '홀로 사는 노인의 문제'로 좁게 본다. 틀린 인식이다.

고독사는 이미 청년층과 중장년층으로 번졌다. 40·50대 사망자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고, 20·30대 사례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5%를 넘어선 지금, 고독사는 특정 세대의 비극이 아니라 '혼자 사는 모든 사람'의 잠재적 위험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응 방식은 여전히 복지관 방문과 전화 안부 확인에 머물러 있다.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데 급급하다.

문제의 핵심은 '연결 단절'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 복도에서 이웃을 마주치는 일이 흔했다. 지금은 같은 층 주민의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공동체가 무너진 자리에서 고독은 조용히 자라난다. 접촉이 사라지면 이상 징후를 눈치챌 사람도 사라진다. 냉장고가 며칠째 열리지 않아도, 우편함이 가득 차도,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기술이 보완재로 들어올 수 있다. 전력 사용량, 수도 검침, 스마트 센서를 활용한 생활 패턴 모니터링은 이미 일부 지자체에서 실험 중이다. 일본 일부 지역은 전기 포트 사용 여부를 가족에게 알리는 단순한 IoT 장치로 독거 어르신 안부를 확인한다. 기술이 복잡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일상의 '정상 신호'가 끊겼을 때 누군가에게 닿는 구조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알림을 받고 문을 두드릴 사람이 결국 필요하다.

결국 공동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서울 일부 구에서 시작한 '이웃살피미' 프로그램, 지역 편의점 직원을 고독사 예방 네트워크에 포함시키는 시도, 공동주택 관리인을 복지 연계 창구로 활용하는 모델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웃이 이웃을 본다. 직업적 복지 인력만으로는 촘촘하게 메울 수 없는 빈틈을 일상의 관계망이 채운다는 발상이다.

반론도 있다.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사람에 대한 개입의 정당성 문제는 실제로 따져봐야 할 쟁점이다. 하지만 발견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 앞에서, '불편할 수 있는 관심'과 '없는 것보다 나은 무관심' 사이의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다.

3,924명. 이 숫자가 내년에는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앱 하나, 정책 하나가 아니라, 옆집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문화가 먼저다. 기술은 경보를 울리고, 공동체는 그 문을 연다. 두 가지가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숫자는 줄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