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고시원에 사는 29세 박모 씨는 지난해 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대학 등록금 대출로 시작한 빚이 취업 실패와 생활비 카드 돌려막기를 거치며 4년 만에 4,000만 원을 넘어섰다. 그가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은 월수입의 절반을 웃돌았다. 첫 직장을 구하기 전에 이미 신용불량자 문턱에 섰다.

박 씨의 사례는 특수하지 않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30대 이하 청년층의 개인파산·회생 신청 건수는 최근 수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되면서 변동금리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청년 고용률 정체가 맞물리며 채무 상환 능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빚의 구조: 등록금에서 생활비까지

청년 채무의 출발점은 학자금이다. 한국장학재단 대출을 받아 대학을 마쳐도, 취업까지 걸리는 평균 유예 기간 동안 이자는 쌓인다. 여기에 보증금 마련을 위한 전세자금 대출, 소비를 버티게 해주는 마이너스통장과 카드론이 얹힌다. 빚의 층위가 세 겹, 네 겹으로 쌓이는 구조다. 문제는 이 빚들이 대부분 고금리 단기 상품이라는 점이다. 저축은행이나 카드사 대출 금리가 연 15~20%에 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 원금을 줄이기 전에 이자에 먼저 잠식당한다.

취업 시장의 문턱도 여전히 높다. 청년 체감 실업률은 공식 수치를 훨씬 웃돈다. 아르바이트나 단기 계약직을 전전하는 청년들은 소득이 불안정해 채무 상환 계획을 세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은행 정규 대출은 신용점수와 소득 증빙이 막아서고, 결국 고금리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신복위의 실험: 감면율 확대와 자립 패키지

신용회복위원회는 최근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지원책을 내놨다. 핵심은 채무 감면 폭의 확대다. 1년 이상 성실하게 상환한 뒤 남은 빚을 일시에 갚을 경우, 기존 15%이던 채무 감면율을 최대 20%까지 높이기로 했다. 적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수천만 원 규모의 채무를 안고 있는 청년에게 수백만 원의 실질 감면은 재기의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채무 감면은 '부채 청산'의 출구일 뿐, 그 이후 청년이 다시 정상적인 경제 주체로 서게 하는 프로그램이 뒤따르지 않으면 재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개인회생을 마친 뒤 수년 안에 다시 채무 위기에 빠지는 청년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은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채무 조정 그 다음: 자립 설계의 공백

해외 사례는 시사점을 준다. 영국 머니앤드펜션스서비스(MaPS)는 채무 상담과 함께 취업 연계, 금융 교육, 심리 상담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제공한다. 독일의 슐덴베라퉁(Schuldnerberatung) 역시 파산 이후 사회 복귀를 위한 생활 설계 지원을 의무화하고 있다. 공통점은 '빚을 없애는 것'과 '다시 서는 것'을 별개의 과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청년 채무 지원 체계는 아직 두 단계가 분리돼 있다. 채무 조정은 신복위와 법원이 담당하고, 취업 지원은 고용노동부와 지자체 청년센터가 따로 맡는다. 두 기관 사이에 데이터는 공유되지 않고, 당사자 청년이 직접 발품을 팔지 않으면 연계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파산 신청서를 내고 법원 문을 나선 청년에게 고용센터 주소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스물아홉의 박 씨는 회생 계획 인가를 기다리며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빚을 갚는 방법은 배웠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안 가르쳐줬어요.」 제도가 청산해야 할 것은 채무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