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열일곱 살 아이가 SNS 메시지 하나로 마약을 받았다. 택배처럼. 현관문 앞에. 이 한 줄의 사실이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마약 문제의 본질을 압축한다. 더 이상 뒷골목의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과 경찰 통계를 보면, 마약 사범 중 10대와 20대의 비중이 해마다 빠르게 늘고 있다. 전체 마약 사범 가운데 30대 이하가 절반을 넘어선 해도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번아웃을 달래려 손을 댔다가 의존에 빠지는 사례도 수사 기록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마약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이나 특수한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일상의 결에 스며들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단속을 강화하고, 처벌을 높이면 된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공급망을 차단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해서 경고한다. 1970~80년대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은 수십 년간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쏟아부었으나, 마약 사용 인구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투옥된 이들이 사회로 돌아왔을 때 더 깊은 의존과 범죄의 순환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단속은 공급을 줄일 수 있지만, 이미 중독된 사람의 갈망은 줄이지 못한다.

마약 중독은 도덕의 실패가 아니라 뇌의 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내외 정신건강 의학계가 수십 년째 반복하는 이 명제가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낯설게 들린다. 중독자를 범죄자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은 신고와 치료의 경로에서 스스로를 차단한다. 발각이 두려워 숨고, 숨는 동안 중독은 깊어진다. 지금 한국의 마약 치료 보호 시설과 재활 프로그램의 규모는 문제의 크기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된다.

포르투갈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1년 포르투갈은 마약 소지를 비범죄화하고, 대신 치료와 사회 복귀 프로그램에 자원을 집중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포르투갈의 마약 관련 HIV 감염률과 과다복용 사망률은 유럽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마약을 허용하자는 말이 아님은 물론이다. 중독자를 처벌의 대상이 아닌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한국도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 보호 제도가 있고, 자진 신고자에 대한 기소유예 규정도 있다. 그러나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크다. 치료 시설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재활 이후 사회 복귀를 위한 고용·주거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중독에서 벗어났다 해도 돌아갈 삶의 자리가 없으면, 재발은 필연에 가깝다.

10대 청소년이 마약에 손을 대는 데는 단 한 번의 클릭이면 충분한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우리 사회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이 경찰력의 증원과 형량의 상향뿐이라면, 그것은 댐이 무너지는 앞에서 양동이를 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 범죄를 처벌하되, 중독자를 치료하고, 재활자를 사회로 돌려보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 이것은 관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의 문제다.

마약은 골목에서 자라지 않는다. 방치된 마음 속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