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의 전성기는 길어야 5년이다. 스물다섯이면 '베테랑' 소리를 듣고, 서른이면 이미 전설 취급을 받는 세계다. 그 짧은 커리어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무엇이 남는가. 화려한 대회 트로피도, 팬들의 함성도 아니다. 다음 직업을 어떻게 구할지 막막한 현실이 남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이스포츠 실태조사'가 드러낸 수치 하나가 무겁게 걸린다. 은퇴 후 코치·감독·사무국 등 이스포츠 관련 직업을 희망한다는 선수 비중이 2022년 35.2%에서 2023년 26.2%로 9퍼센트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단순히 희망 직종이 바뀐 게 아니다. 이스포츠 안에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체념이 수치로 굳어진 것이다.
코치나 해설가 자리는 애초에 몇 안 된다. 리그 하나가 운영하는 팀이 열 개 남짓이고, 팀당 코칭스태프 자리는 손에 꼽힌다. '업계에 남겠다'는 선수 모두를 수용할 구조 자체가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스트리머로 전향해 살아남는 이는 소수이고, 대다수는 게임 외 분야에서 사실상 신입처럼 다시 시작한다. 10대 후반부터 훈련에 매몰됐던 선수들에게 직업 전환 준비란 애초에 사치였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바꿔야 한다. 흔히 '선수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하루 열 시간 이상 게임에 쏟아붓는 합숙 생활 속에서 진로 교육을 받을 여건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구단이 계약 해지와 함께 선수를 방류하는 관행은 유지되는데, 은퇴 후 경력 설계는 전적으로 개인 몫으로 떠넘기는 구조는 공정하지 않다. 프로스포츠라면 적어도 그 정도는 짚어야 한다.
축구나 야구 같은 전통 스포츠도 선수 은퇴 후 진로 지원 체계가 충분치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이스포츠는 출발선이 더 낮다. 선수 평균 연령이 워낙 어리고, 업력도 짧아 제도가 뿌리내릴 시간조차 부족했다. 그 공백을 개인의 '준비 부족'으로 채우는 건 구조적 결함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논리다.
구단과 협회, 그리고 정부 지원 기관이 함께 설계해야 할 것이 있다. 현역 시절부터 병행할 수 있는 직업교육 프로그램, 은퇴 선수를 대상으로 한 취업 연계 네트워크, 계약 종료 이후 일정 기간 생계를 버텨줄 최소한의 안전망이 그것이다. 이미 일부 해외 이스포츠 연맹은 선수 복지 조항을 표준 계약서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이 이스포츠 종주국을 자처하면서 이 부분만큼은 후발 주자보다 뒤처져 있다는 사실은 낯부끄럽다.
스물다섯에 '앞으로 뭘 해야 하지'를 처음 고민하게 만드는 산업이 건강할 리 없다. 화려한 경기장 조명 뒤편의 이 질문에 누군가는 지금 당장 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