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국내 우울증 환자 수가 처음으로 11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83만여 명이던 환자가 4년 만에 110만 6,603명으로 불어났다. 33%가 넘는 증가율이다. 이것은 통계가 아니다. 서울 강남구 인구보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 자체를 버겁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숫자의 중심에 청년이 있다. 취업 준비, 학자금 대출, 전세 사기, 불안정한 계약직. 한국의 20·30대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감당하면서, '마음이 힘들다'고 말할 여유조차 사치처럼 느끼도록 훈련받아 왔다. 우울증은 의지 박약의 증거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렇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더 기묘한 것은, 병원 문을 두드린 110만 명은 그나마 '나은 쪽'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건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제 우울 증상을 겪으면서도 진단받지 않은 인구가 공식 통계의 몇 배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꾸준히 나온다. 정신과 진료 이력이 보험 가입이나 취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이 아픔을 숨겨야 하는 구조,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청년 자살률 상위권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숫자를 직접 나열하는 것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무게가 느껴진다. 그런데 예산은 어떤가. 한국의 정신보건 예산은 전체 보건 예산 대비 비율로 따지면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말로는 '청년 정신건강'을 외치면서, 돈과 시스템은 그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
치유 시스템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청년 마음건강 바우처, 정신건강복지센터, 대학 내 상담 프로그램 등 제도는 존재한다. 문제는 촘촘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방 소도시의 청년이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으려면 한 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학 상담센터는 대기 기간이 수 주에 달하고, 학교를 떠난 순간 그 울타리마저 사라진다. 시스템은 있되 닿지 않는다.
무엇이 필요한가. 거창한 선언보다 실질적인 접근성이다. 온라인 심리 상담 급여화, 직장 내 정신건강 지원 의무화,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사회적 낙인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호 장치. 이 세 가지만 제대로 작동해도 110만 명 중 상당수는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다.
경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경쟁에서 쓰러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마음의 골절을 방치한 채 달리기를 계속 요구하는 사회는,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잃는다. 110만이라는 숫자는 경고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