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에 점 하나를 찍는 일이 이토록 오래 걸린다.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은 기술 검토가 끝난 뒤에도 수년씩 표류하는 게 한국의 반복된 경험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정부가 1.4GW급 대형 원전 2기와 0.7GW 규모의 소형모듈원전(SMR) 1기의 부지를 확정하며 일정표를 공식화했다. 대형 원전은 각각 2037년·2038년 준공, SMR은 2035년 준공이 목표다. 선언은 나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왜 지금, 왜 이 부지인가
이번 부지 선정은 2022년 이후 에너지 정책 전환의 연장선에 있다. 탈원전 기조를 접은 뒤 정부는 원전 비중 확대를 국가 에너지 전략의 중심에 놓았고, 노후 원전 수명 연장과 함께 신규 건설 로드맵을 동시에 추진해왔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 전망치가 가파르게 올라가면서 2030년대 중반이라는 준공 시점이 '너무 늦다'는 산업계 압박도 거세졌다.
부지 선정의 기술적 기준은 냉각수 확보, 지진 안전성, 송전망 연계 가능성 등이다. 그러나 어느 지역이 최종 확정됐든 그 결정이 지역사회에 착지하는 방식은 기술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역 경제 효과라는 당근과 핵 폐기물·사고 위험이라는 채찍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주민 수용성 — '찬반'보다 복잡한 지형
원전 부지 인근 주민들의 반응은 단순한 찬반 구도로 읽히지 않는다. 일자리와 지역개발 교부금을 기대하는 목소리와, 부동산 가치 하락·관광·농수산물 이미지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같은 마을 안에서 교차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원전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한 경우도 있었다. 수용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착공 지연은 수년 단위로 쌓인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입지 유연성이 높다는 장점을 내세우지만, 국내에선 아직 운영 실적이 없는 기술이다. 2035년 준공이라는 일정은 설계 인허가·건설·시운전을 역산하면 이미 여유가 없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인허가 심사는 통상 수년이 소요된다. 인허가 일정이 단 한 번 삐끗해도 준공 목표는 흔들린다.
인허가·인력·계통 — 세 병목의 동시 해소가 관건
부지 선정 이후의 실제 난관은 크게 세 갈래다. 첫째는 인허가 속도다. 현행 원자력안전법 체계에서 신규 노형의 표준설계 인가부터 건설 허가까지 절차를 단축할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선언한 일정은 종이 위에만 존재한다. 둘째는 원전 전문 인력이다. 탈원전 기간 동안 설계·시공·감리 인력 풀이 줄었다는 것은 업계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사실이다. 대형 원전 2기와 SMR을 동시에 추진하면 인력 경합이 불가피하다. 셋째는 전력 계통이다. 2037~2038년에 준공되는 원전이 실제로 전력망에 연결되려면 송전선로 건설이 선행돼야 하는데, 국내 송전탑 건설은 주민 반발과 행정 절차로 수십 년이 걸린 전례도 있다.
결국 원전 부지 확정은 긴 경주의 출발 신호일 뿐이다. 2035년 SMR의 첫 점등까지 남은 시간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시간 안에 지역 신뢰, 제도 속도, 인력 생태계가 동시에 움직이지 않으면, 가장 야심 찬 원전 로드맵도 연기 발표로 끝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