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마지막 주말, 전국 극장 스크린 열 개 중 여덟 개가 같은 영화를 틀었다. <범죄도시4>의 개봉 첫 주말 상영 점유율 82%. 나머지 20%를 수십 편의 영화가 나눠 가졌다. 숫자만으로도 장면이 그려진다. 관객이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지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본지는 이 구조가 한국 영화 산업의 장기적 건강성을 위협한다고 판단한다. 흥행 성공을 탓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의 결함이다.
첫째, 스크린 쏠림은 관객의 선택권을 박탈한다. 극장은 공공재적 성격을 일부 띤 문화 인프라다. 특정 작품이 상영관을 사실상 독점할 때, 독립영화·예술영화·외국어 영화를 보려는 관객은 극장 문을 닫고 돌아서야 한다.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문화 접근권의 침해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독립·예술영화의 평균 상영 기간은 2주를 넘기기 어려운 실정이며, 대작 개봉 시기와 겹치면 개봉 첫날 상영 회수가 한 자릿수로 추락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둘째, 제작 생태계의 쏠림이 창작의 다양성을 말려 죽인다. 투자와 배급이 검증된 시리즈물과 대형 자본 작품으로 집중될수록, 신인 감독과 실험적 프로젝트는 자금줄부터 막힌다. 할리우드가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에 매몰되며 중예산 드라마 영화 시장이 사실상 붕괴된 전철을 한국 영화계가 밟을 수 있다는 우려는 과장이 아니다. <기생충>도, <버닝>도 처음엔 '비주류'였다. 다양성이 없다면 다음 세대의 칸영화제 수상작도 없다.
셋째, 현행 제도는 이 문제를 방치하는 데 가깝다. 스크린 상한제 논의는 업계의 반발과 규제 논쟁 속에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자율 규제에 맡기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80%를 넘는 점유율이 버젓이 기록되는 현실 앞에서 자율의 한계는 이미 증명됐다. 프랑스는 단일 영화의 주간 상영 점유율 상한을 법으로 규정하고, 입장권 부과금의 일부를 독립영화 지원 재원으로 환류한다. 한국이 참고할 모델은 이미 존재한다.
물론 투자자와 배급사의 논리를 무시할 수 없다. 대작의 흥행이 산업 전체의 수익을 떠받치고, 그 수익이 다시 제작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주장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단기 수익을 위해 다양성이라는 토양을 고갈시키는 농법은 결국 한 해 수확을 위해 밭을 망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영화 산업계는 스크린 상한 기준의 법제화, 멀티플렉스의 다양성 상영 의무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지원 확대를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한국 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힘은 획일화된 흥행 공식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경쟁하며 만들어낸 저력에서 나왔다. 그 저력을 지키는 일이 곧 산업을 지키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