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한 편에 수백억 원. 회당 제작비가 10억 원을 훌쩍 넘는 작품이 줄을 잇는다. 글로벌 OTT가 쏟아붓던 투자금이 K콘텐츠 시장을 달궜고, 스태프 몸값과 출연료, 세트 비용이 일제히 치솟았다. 문제는 그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플랫폼들이 수익성 압박에 직면하면서 한국 콘텐츠 투자를 선별·축소하는 기조로 전환하고 있다. 호황의 과실을 누렸던 구조가 이제 역풍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본지는 K콘텐츠 산업이 제작비 구조를 냉정하게 재점검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거품을 걷어내는 일은 산업의 후퇴가 아니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전제 조건이다.

첫째, 현재의 수익 구조는 제작사에 근본적으로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글로벌 OTT는 제작사에 통상 10~15% 수준의 마진을 보장하는 대신 지식재산권(IP)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해왔다. 작품이 전 세계에서 흥행해도 제작사가 누리는 후속 수익은 사실상 없다. 고정 마진에 기댄 제작비 확대는 결국 OTT 자본이 빠져나가는 순간 버티기 어려운 구조다. 제작비를 높이면 높일수록 그 리스크는 오롯이 한국 산업 생태계가 떠안게 된다.

둘째, IP 주권 없는 제작비 팽창은 산업의 공동화를 부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6년 2월 발간한 보고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짚었다. 글로벌 OTT의 IP 독점과 불균형한 수익 구조가 한국 제작 생태계의 자생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세계가 열광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면서도 그 콘텐츠의 미래 가치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글로벌 플랫폼의 하청 제작소로 전락할 수 있다. 제작비 거품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IP 주권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셋째, 제작비 거품은 중소 제작사와 신진 창작자를 시장에서 밀어낸다. 대형 자본이 몰리면서 스태프 임금과 장비 사용료가 급등했고, 중소 규모의 제작사는 같은 시장에서 경쟁 자체가 어려워졌다. 창작의 다양성은 대형 자본이 아니라 다양한 규모의 플레이어들이 공존할 때 살아난다. 지금의 구조가 굳어진다면 K콘텐츠의 저력이었던 실험적 기획과 신선한 서사는 점차 자취를 감출 것이다.

해법은 비용 삭감의 강요가 아니다. 한국형 제작위원회 모델, IP 공동 보유 계약 표준화, 단계별 수익 배분 구조 등 제작사가 성과에 따라 정당한 이익을 회수할 수 있는 계약 틀을 산업 차원에서 정립해야 한다. 정부와 진흥기관은 이 구조적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 수단을 구체화해야 한다.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은 돈의 규모가 아니라 이야기의 힘에서 나왔다. 그 힘을 오래 유지하려면, 지금 과감히 거품을 걷어낼 용기가 필요하다. 뒤늦게 구조 개편을 논의하는 것보다, 투자 축소의 파고가 본격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상생 모델을 설계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시장이 뜨거울 때 미래를 준비하는 냉정함에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