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한 편 제작비가 회당 30억 원을 넘어서는 시대다. 그 돈이 고스란히 콘텐츠 품질로 이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거품은 정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중소 제작사는 수주조차 못 한 채 문을 닫고, 신인 작가와 스태프는 생계의 벼랑에 선다. K콘텐츠의 외연이 넓어지는 동안, 그 안을 떠받치는 생태계는 조용히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26년 5월 29일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K콘텐츠 상생 생태계 조성을 위한 첫 공식 회의를 개최한 것은 뒤늦었지만 의미 있는 출발이다. 본지는 이 논의가 형식적 간담회로 끝나지 않고, 구속력 있는 상생 가이드라인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첫째, 제작비 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플랫폼과 대형 스튜디오 사이의 계약은 철저히 비공개다. 수익 배분 기준이 없으니 하청 구조의 중소 제작사는 협상력을 가질 수 없다. 표준계약서가 있어도 실제 현장에서는 사문화된 경우가 허다하다는 지적이 업계 안에서 공공연히 나온다. 제작비 산정 기준과 수익 배분 원칙을 가이드라인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첫 과제다.
둘째, 스태프와 창작자의 노동 안전망이 작동해야 한다. K콘텐츠의 세계적 성공은 수많은 무명의 조명팀, 미술팀, 편집 스태프가 쌓아올린 것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4대 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프리랜서 신분으로 계약이 끊기면 즉시 생계 위협에 노출된다. 산업이 성장할수록 하부 구조의 균열이 깊어지는 역설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셋째, 신규 진입자와 다양성의 통로를 열어야 한다. 지금의 K콘텐츠 시장은 검증된 IP와 스타 작가, 대형 자본이 독점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독립 영화, 단편 드라마, 신인 감독의 실험적 작품이 플랫폼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 세대의 K콘텐츠를 이끌 창작자를 지금 키우지 않으면, 10년 뒤 콘텐츠 한류는 레퍼토리 없는 오케스트라 신세가 된다.
상생은 구호가 아니다. 수치로 설계하고, 계약으로 구현하고, 감독으로 작동하는 제도여야 한다. 5월의 첫 회의가 진짜 출발점이 되려면, 정부는 가이드라인 제정 일정을 공개하고, 업계는 자율 규율의 한계를 인정하며 테이블 위에 데이터를 올려야 한다. 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성과를 생태계 전체가 나눌 수 있을 때, 그 성공은 비로소 지속 가능하다. 거품이 꺼진 뒤에 대화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다.
